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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의 지혜/앤디 메리필드

서정의 공간 2014. 5. 1. 21:15

 

 

<당나귀의 지혜>, 앤디 메리필드 지음, 2009년

 

 

 

 

 다시 읽는다. 두 번 읽어도 좋을 책이다.

 

 ‘혼돈의 세상에서 평온함을 찾기’란 부제가 붙었다. 영국 작가 앤디 메리필드가 쓴 <당나귀의 지혜>란 책이다. 당나귀와 함께 행복을 찾아 떠난 어느 도시인 이야기라는 표지 문구, 짐 실은 당나귀와 걸어가는 배낭 여행자, 그 배경으로 펼쳐진 잔설 쌓인 산, 이런 요소는 책을 선택하기에 주저함이 없게 했다. 어서 문장 속으로 들어가고 싶게끔.

 

  운 좋은 당나귀가 한 마리가 저자의 여행길에 동행한다. 운이 좋다는 건 순전히 내 생각이다. 평생 짐 나르는 임무를 부여받은 것처럼 학대받아 온 당나귀가 최소한의 짐만 싣고 느긋하게 여행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오트오베르뉴 지방의 아름다운 풍경 속을 유람한 그리부예. 밀란 쿤데라의 소설 <느림>에서, “속도라는 악마는 종종 망각과 회피를 동반한다. 느림은 기억과 대면을 동반한다.” 라는 구절을 인용하며 작가는 기억하고 대면하기 위해 실존과 평온을 찾기 위해 먼 여행을 떠난다.

 

 겸손하고 고귀한 동료 그리부예와 함께 느린 속도로 걸으며 자기 자신과 대면한다. 이렇게 특별한 여행을 하는 동안 그리부예의 불가사의한 지혜에 불쑥 놀라기도 하면서. <당나귀의 지혜>는 작고 평범한 일상을 통해서 얼마든지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음을 감정이입 없는 깔끔한 문체로 들려준다.

 

 이 책은 소로우의 <월든>처럼 음미하면서 귀담아 읽을 필요가 있다. 그래서 가끔 되돌이표를 따라 노래하듯 읽은 문장을 다시 읽곤 했다. <월든>만큼 느리게 읽어야 하나 한 줄도 흘려버릴 문장은 없다. 40항목의 문장으로 된 제목은 그리부예와의 여행을 예고한다. ‘머릿속에서 슈베르트가 맴돈다.’라는 첫 번 째 제목처럼, 여행은 슈베르트 피아노소나타 20번 A장조와 함께 시작한다. 발타자르를 회상하는 것으로. 그리고 여행하는 내내 슈베르트 선율이 그를 맴돈다. 슈베르트 불행한 말년의 삶이 그대로 녹아있는 슬픈 멜로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