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
구중서, <면앙정에 올라서서> 에서
'인간성'이란 것을 원리적으로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퇴계는 말했다.
사람에게는 가여워하는 마음[惻隱之心], 부끄러워하는 마음[羞惡之心], 사양하는 마음[(辭讓之心], 따지는 마음[是非之心]이 있다. 이것은 선과 악의 구별이 없는 단서로서 본성적인 이성이고 변함이 없다. 이 것은 이理에서 발단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사람에게는 기쁨, 노여움, 슬픔, 두려움, 사랑, 미움, 욕망이 있다. 이것은 선과 악의 영향을 입으며 발생하는 감정적 기질이고, 변할 수가 있다. 이것은 기氣에서 생기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성에는 '이'와 '기', 두 요소가 있다.
퇴계의 이 '사단칠정론'의 논거를 접하고 가장 먼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이 기대승이다. 그리하여 그는 퇴계에게 이의를 제기하는 편지를 썼다.
인간성 안에 4단과 7정의 구별이 있다는 것은 머리나 말로써는 가능하다. 그러나 실제로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마음의 이 요소들은 각기 따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고 함께 발생한다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차라리 '이기공발론理氣共發論'을 주장하겠다.
이황과 기대승 사이에 이어지는 토론은 당시의 지식인 사회에 널리 알려졌다. 육곡 이이도 이 토론에 개입했다. 이이는 '이기이원론적 일원론'을 주장했다. 그 뜻은 기대승의 생각과 비슷했다. 퇴계도 뒤에 이기호발론理氣互發論을 펴 원래의 자기 이론을 조금 수정했다.
그러나 이것으로 토론의 승패가 가려진 것은 아니다. 퇴계 자신도 기계적인 이론을 좋아한 편이 아니었다. 퇴계도 이론보다는 평번한 일상 속에 진실이 있다고 생각했다. 지성과 행동의 일치를 중요시했으며 성의와 공경하는 마음으로 사람을 대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하여 그는 훨씬 나이가 아래인 사람들의 의견도 겸허히 받아들였다.
기대승의 나이 마흔둘이 되던 1568년 퇴계는 <성학십도>라는 책을 디대승에게 보내며 잘못된 데가 있으면 지적해달라고 했다. 그는 기대승을 학문 연구에 있어 같은 수준의 동료로 대우한 것이다. 퇴계는 매화를 읊은 한시 여덟 수를 지어 기대승에게 보내고, 기대승은 답으로 역시 매화를 읊은 한시 여덟 수를 퇴계에게 보냈다. 그들은 매화가 아름다워서라기보다 추위 속에서도 향기를 잃지 않고 피어 있는 꽃이기 때문에 좋아한다고 했다. 기대승은 서울에서 퇴계를 만나면 스승으로 모셨다. 퇴계가 관직이 싫어 고향으로 떠나는 날 한강 나루에까지 나와 배웅하며 슬퍼했다.
한강 물은 도도히 만고에 흐르는데
선생이 떠나심을 어찌 붙잡으랴
모래밭 뱃머리에 머뭇거리며
이별하는 시름 무게 만 섬이런가
-기대승, <봉볕 퇴계 선생>
율곡 이이도 퇴계의 이기론에 이의를 제기했지만 그의 인격을 존경하는 마음은 극진했다. 이기설의 입장이 다르다 하여 세상에서는 퇴계 쪽은 영남학파라 하고 율곡 쪽을 기호학파라 했다. 심지어 이 학설의 입장차이를 동인과 서인의 당쟁에 이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퇴계의 별세 소식을 듣고 육곡은 얼마나 슬퍼했던가.
옥과 금처럼 순수한 그 기품
위아래 백성이 혜택을 바랐는데
물길 돌리고 길을 연 책만이 새로워라
먼 남쪽 하늘 및 저승 이승 갈리니
애끊는 눈물 속 해주에 서 있구나
-이이, <곡 퇴계 선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