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영화

당나귀의 지혜

서정의 공간 2015. 8. 23. 10:53

 

 

 

 앤디 메리필드 지음/정아은 옮김/멜론/2009년 4월 10일

 

 

 

 

밀란 쿤데라는 소설 『느림』에서 이렇게 말했다. "속도라는 악마는 종종 망각과 회피를 동반한다.

그리고 느림은 기억과 대면을 동반한다."

저자 앤디 메리필드는 기억하고 대면하기 위해, 실존과 평온을 찾기 위해 당나귀 그리부예와 함께.

여행을 떠나서 남부 오트오베르뉴  지방의 아름다운 풍경 속을 걸어다닌다. 겸손하고 고귀한 동료

그리부예와 함께 느린 속도로 여행하며 인생, 존재, 충만함이라는 커다란 수수께끼에 대해 성찰하면서

자기 자신과 대면한다.

그는 프랑스 시골지방을 여행하는 동안 문학과 과학, 진실과 아름다움, 자연의 완전함에 대해 숙고하면서

그리부예의 불가사의한 지혜에 놀란다.

 『당나귀의 지혜』는 우리에게 삶의 지혜가 특별한 사건을 통해서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찾으려고만 하면 주위의 평범한 일상을 통해서도 얻어질 수 있음을 일깨워준다.     <서문> 에서

 

 

차례

1. 머릿속에서 슈베르트가 맴돈다

2. 오늘 아침은 호도애 소리에 잠을 깬다

3. 오전 나절 우리는 구불구불한 길을 걷고 있다

4. 그리부예가 갑자기 멈춰 서더니

5. 여행을 하다 보면 수 없이

6. 우리는 오래된 떡갈나무

7. 그리부예가 떨기나무를 먹는 동안

8. 위에서는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9. 늦은 오후, 우리는 그림 같이 똑떨어진

10. 자, 이제 높은 곳으로 떠나자

11. 그리부예, 너는 아마 알고 있을 것이다

12. 하늘은 한 점 구름 없이 푸르다

13. 이제 나의 하루는 오롯이 나 자신의

14. 우리는 양떼와 소떼 사이로

15. 당나귀는 통증역치가 높아

16. 오트-루아르 지방은 조용한 친구들끼리

17. 나는 길을 따라 내려가면서

18. 생명의 정수인 이슬이 떨어지고

19. 미셸과 프랑수아에게 작별인사를

20. 어른이 된 이후 나는 늘 소음에 시달려왔다

 

 

 

 
 후기:

책갈피에 수십 장의 포스트잇이 붙어있다. 이 책을 읽고서 당나귀에 애정을 갖게 되었다.

영화 <당나귀  발타자르>를 보며 제1장 '머릿속에서 슈베르트가 맴돈다'는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피아노 소나타 20번. 자전거 페달을 밟아 산꼭대기로 올라가는 내내 그 애수어린 음색이

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슈베르트의 느리고 정확하고 성긴 화음이 나의 느리고 헐떡이는

호흡과 절묘하게 조응된다.

 

그는 당나귀 울음소리를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20번 A장조와 연결한다. 당나귀 울음소리가

슈베르트 소나타와 훌륭한 듀엣을 이룬다는 사실을 누가 믿겠는가. 목구멍 깊은 곳에서 울려나오는

쉰 소리로 느리고 아름다운 곡조를 자아내며 우는 당나귀.  날카롭고도 통렬한 고통에 싸인

나른한 일요일 오후의 소리.

 

그것은 산 위 초원에 누워서 죽어가는 발타자르의 소리다. 발타자르는 로베르 브레송 감독이

1966년에 제작한 영화에 나오는 당나귀 이름이다.

 

이 대목 때문에 영화 <당나귀 발타자르>를 보았고, 영화 속에서 총을 맞고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당나귀의 모습을 담은 장면에서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20번 A장도를 들었다.

몇 번이고 되돌이하여 듣던 구슬픈 곡, 죽어가는 발타자르.

 

작가는 한때 꿈을 잃고 허무해하는 사람들과 함께 미국거리를 한없이 방황했다. 뉴욕이라는 도시에

매료되었던 소년이 어른이 되어 그 도시의 교묘한 수완과 속임수에 넌더리를 대고 있었다.

그럴 때 함께 여행하려고 고른, 의지하고 신뢰할 수 있다고 여겨진, 주둥이로 툭툭 치며 장난을

걸어오는 당나귀 그리부예였다.

 

초원이 세상으로 문을 열 때 그

안에서는 피아노 소나타가 울리고 바깥 풍경에서는 교향곡이 울려퍼짐을 느낀다.

호주 속담에 "풀을 뜯고 있는 당나귀를 지켜보려면 의자를 챙겨라." 라는 말이 있다. 당나귀를

관찰하다 보면 몇 시간이 훌쩍 흘러가버리기도 한다.

 

이 책은 읽는 이에게

작가와 함께, 또 당나귀 그리부예와 함께 느리게 또는 종종걸음으로 따라붙게 하며

함께 여행하게 할 것이다. 여행의 여운도 함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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