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일요일의 마음』①호퍼, 철학으로의 이탈
호퍼, <철학으로의 이탈>
호퍼, 철학으로의 이탈, 1959
호퍼의 그림은 매우 미국적이다. 그의 그림에 나오는 인물들은 피츠제럴드에 나오는 주변 인물들 같고,
그의 그림에 나오는 도시 풍경은 피츠제럴드 소설의 무대 같다. 좀 에로틱하고 좀 퇴폐적이고 좀 고독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면적이다.
낯선 방이다. 벽과 바닥에는 아무런 무늬도 없다. 벽에 액자가 하나 걸려있고, 무미건조한 침대가 구석에 놓여 있다. 그림 속에서 창은 하나지만, 벽에 비친 사각의 햇살로 미루어 그림에서는 보이지 않는 창이 하나 더 있을 것이다. 창밖에는 밀밭처럼 보이는 들판이 강한 햇살 아래 펼쳐 있다. 침대 위에 붉은 슈미즈를 입은 여자가 흰 베개를 베고 벽 쪽으로 돌아누워 있다. 여자의 하반신은 맨살로 노출되어 있다.
말려 올라간 슈미즈 아래, 맨살의 엉덩이가 에로틱하다. 여자와는 대조적인 모습으로 침대에 걸터앉아 있는 남자가 화면의 중앙을 차지한다. 그는 옷을 다 입고, 양말에 구두까지 신고 침대에 걸터앉아 이 ㅆ다. 무엇을 생각하는지 그의 표정은 심각해 보인다. 그리고 그 남자의 옆에 책이 한 권 펼쳐져 있다.
벗은 여자의 책은 아무래도 한 침대에서 어울지리 않는다. 남자의 이마와 왼편 얼굴, 어깨 그리고 왼손에 햇살이 쏟아지고 있다. 왼발의 구두도 창 넘어 들어온 햇살에 절반 잘려 있다. 남자는 마치 햇살의 감옥에 갇혀있는 듯하다. 남자는 엉덩이가 탐스런 알몸을 두고도, 풍요로운 들판을 곁에 두고도, 밝고 강한 햇살을 받고 있으면서도 심각한 결핍 속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그림이 감추고 있는 드라마는 무엇일까. 기울어진 햇살로 보아, 아마도 오후 시간인 듯한데, 여자는 왜 맨살을 드러내고 자고 있을까. 여자와 남자는 조금 전 섹스를 한 것일까. 아마 그랬을 듯싶다. 그림의 제목이 <철학으로의 이탈>이니, 이탈 이전엔 섹스에 집중했을 것이다. 대낮의 섹스였을 것이고, 아직도 에로틱한 분위기가 여자의 하반신에 남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남자에게는 고독한 생각이 있을 뿐이다. 섹스를 했지만, 남자는 그 방에도, 여자에게도, 창밖의 풍경에게도, 심지어는 자기 자신에게도 소외감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도대체 이 모은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내가 원하는 것은 또 무엇일까'라고 남자는 생각하고 있는지 모른다.
이 남자는 까뮈의 「이방인」에 나오는 주인공 뫼르소인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장례식을 마치고, 애인과 함께 낯선 방에서 한낮을 보내고 있는 뫼르소라면 이런 분위기를 보여줄지 모르겠다. 「이방인」 에서처럼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햇살이다. 남자의 고독과 혼란은 분명 햇살에 의존하고 있다. 햇살은 남자의 어두운 내면을 역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남자는 발 아래 햇살이 왼발에 걸리기 이전부터 저렇게 멍하니 앉아 있었는는지도 모른다. 이제 좀더 시간이 흐르면 햇살은 남자의 왼발을 벗어나게 될 것이다.
매우 낯선 풍경이고 낯선 상황이다. 그러나 저 햇살 속에 저 남자처럼 그렇게 어두운 내면의 지배를 받으며 멍하니 앉아 있어본 적이 있는 듯한 착각을 주는 그림이기도 하다. 철학과 이성은 행복의 언어가 아니다.
이남호 지음, 『일요일의 마음』,생각의 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