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드에서 감성을 회복하다
에세이피아 2017 여름호
블레드에서 감성을 회복하다
중세의 거리에서 답답했다. 기본 역사가 500년씩은 족히 되는 동유럽 도시를 가벼이 스쳐 지난다는 생각에서다. 여행하는데 무거운 목적이 있을까마는 쉬 올 수 없는 공간에서의 짧은 스침이 안타까웠다. 사라진 옛 고향 터에 선 심정으로 도시와 교감하고 싶었다. 그러나 유럽풍 도시 자체에만 열광했다. 보헤미아 왕국의 천년 역사를 상징하는 프라하성이나 유럽 중세건축의 걸작이라는 카를교에서도,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가 보존된 세계문화유산의 도시 체스키크롬로프나, 800년 역사의 비엔나 성 슈테판 사원에서도 카메라 셔터만 눌러댔다.
한편 안락하기도 했다. 위압감을 주는 빌딩에 질린 눈이 빨간 기와지붕 모양의 안정된 건물에 평화로워졌다. 돌 보도블록이 좋아 바닥을 보며 걸었다. 원색 간판과 조명을 지운 중세의 거리를 상상했다. 고색이 완연한 묵은 건물과 거리에 동화되려 걸음걸이도 늦추었다. 특히, 단순하면서도 똑 같은 모양이 없고 규격으로부터 자유로운 크고 작은 다양한 문이 마음을 홀렸다. 문을 드나들었을 옛 사람을 상상하며 오감을 활짝 열었다. 한 이틀씩 머물며 소요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여행한 기념품을 보고 있다. 볼 때면 그곳을 향한 뭉근한 그리움이 인다. 원형으로 연결시키지 않고 늘어뜨린 빨간색 묵주와 블레드 섬 자석이다. 촉박한 중에도 잊지 않고 산 물건이다. 여행지에서 사 온 자석을 붙이려고 아예 자석보드를 샀다. 그러자 냉장고에 덕지덕지 붙이지 않아도 되고 말끔히 정리가 되었다. 여기에 여행한 흔적이 집결했다. 나는 이들을 보며 회상여행을 한다.
눈 덮인 알프스와 넓은 호수를 끼고 자리한, 슬로베니아의 고요하고 평화로운 호수마을. 중세시대부터 오스트리아, 헝가리 귀족들이 이곳에 별장을 짓고 머물렀다는 오랜 전통의 휴양 도시. 그 호수는 바로 율리안 알프스의 빙하가 만든 블레드 호수다. 그 호수에 조형물을 옮겨놓은 듯 솟은 블레드 섬이 풍경에 방점을 찍는다. 이 작은 섬에 승모승천성당이 있다. 성당은 9~10세기에 슬라브 신화 속 지바여신의 신전을 모셨던 곳에 지어졌다. 오늘의 시간을 예견한 듯 처연하지만 고고하게 천년의 바람을 버텨왔을 성당이다. 배경지식이 전혀 없는 하얀 눈으로 성당과 블레드 성을 본 게 다행이었다. 덕분에 전혀 기대하지 않은 감동이 덤으로 따랐다.
알프스의 숨은 보석이라는 블레드를 여행한 후에야 알았다. 사계가 펼치는 감탄스런 풍경과 함께 그곳에 깃든 역사마저 찬연했다. 성전 입구 양쪽 벽에 붙은 부식된 대리석 성수통이며, 실금이 가고 닳은 티가 역력한 제대 주변 바로크 양식의 집기들…. 그 앞에서 지상에서 고작 100년도 채우지 못할 인간으로 한없이 작아지는 느낌이었다.
세 번 울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기원의 종도 울렸다. 천장에서 늘어뜨린 줄을 잡아당기자 저 하늘에서부터 울리는 듯 뎅그렁뎅그렁 종이 소리를 낸다. 종을 세 번 울리며 가족을 떠올렸다. 이런 곳에서는 굳이 자신의 종교와 연관 지을 필요가 있을까. 종을 울릴 사람들이 금방 길게 줄을 섰다. 성령의 축복이 성전 안에 햇살처럼 자욱이 번졌다.
대부분 여자들은 기념품가게에 솔깃할 것이다. 여행지를 기념할만한 물건을 사지 않으면 뭔가 빠트린 느낌이다. 나도 큰돈이 들지 않는 기념품을 사는 편이다. 성당 옆 작은 기념품가게에서 1단짜리 빨간색 묵주와 블레드 성이 그려진 자석기념품을 샀다. 그곳의 커피도 마셔봐야 하는 법. 아메리카노 커피 한 잔을 사서 소박하고 낡은 성당의 마당에서 3월 초순의 따사로운 볕을 쬐며 커피를 마셨다. 아직 새싹이 돋지 않은 키 큰 나무엔 새집처럼 뭉텅뭉텅 겨우살이가 달려 봄볕을 쬐고 있다. 도시의 길가에서도 종종 눈에 띈 광경이다. 사 온 겨우살이 차를 우려 마시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여행 막바지의 블레드에서 무딘 감정이 회복될 기미가 보였다. 햇살이 반사되는 성당 첨탑과 첨탑이 드리운 그늘 잔디밭을 무심히 바라볼 때다. 눈에 띄지 않던 작은 동상이 하나 보였다. 벌떡 일어나 가까이 가 보니 많이 부식되고 칠이 벗겨진 여자 석상이다. 굽실거리는 긴 머리에 치렁한 치마가 발목까지 내려왔다. 왼손에는 향유병을 들고 오른 손은 가슴께에 갖다 댄, 여인이라기보다 소녀에 가까운 얼굴이다. 얼굴을 덮어씌운 푸르뎅뎅한 이끼와 회색 더께가 앉은 상체, 바스라 질 듯 삭은 치맛단이며…. 그보다 적나라하게 그녀가 겪었을 시간을 드러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동안 동화되지 않아 답답하던 심경이 마침내 울렁울렁해졌다. 성모님을 뵈듯 석상 주변을 맴돌았다. 두 팔로 부식한 돌 치맛단을 잡고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비바람에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살포시 벌어진 입은 성당 첨탑 그늘에서 행복해보였다.
The Baroque statue of M.Magdalene. 석상 아래 적힌 글이다. 이 여인을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고 지나가버린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따른,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지켜 본 막달라의 마리아인 막달레나. 거의 가톨릭교도라는 이곳에서 미사에 참례하면 신심이 부활할는지. 건강에 이상이 생겨 쉬기 시작한 신앙생활이 여남은 해가 되어 간다. 그렇다고 가톨릭이란 종교에서 마음이 떠난 적은 없다. 호수로 향하는 99계단을 내려올 때 막달레나 성녀와 나는 서로 오래 배웅했다.
전통나룻배 플레트나가 섬에서 멀어지자 블레드 섬도 점점 작아졌다. 비로소 과제를 해낼 수 있겠다는 결의 같은 것이 생겼다. 섬에서 나와 올라간, 백 수십 미터 절벽 위의 블레드 성과 그곳에 남은 오랜 시간의 자취는 또 어떻고.
자석보드엔 빈 공간이 약간 남아 있다. 이 빈자리엔 어느 여행지의 자석으로 채워질는지. 이런 설레는 기대가 내일의 활력이 된다.
담긴 이야기를 풀어내고 나니 숨통이 좀 트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