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신문 칼럼

2회 기사-[감성터치] 작심 석 달이 고비

서정의 공간 2018. 2. 27. 22:18





[감성터치] 작심 석 달이 고비 /김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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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2-25 18:57:35
  •  |  본지 30면

    


   
영하 몇 도라는 한파에도 실내수영장은 붐볐다. 이런 날씨에 설마 물놀이들을 나오겠어? 이러고 한적하게 몸 좀 풀겠다던 다부진 다짐이 무색했다. 이는 마치 나는 연례행사처럼 백화점에 나갔는데 일상인 듯 여유롭게 쇼핑하는 이들을 보는 기분이랄까. 나만 시류에서 동떨어져 변방을 사는 묘한 뒤처짐 같은 거랄까.

자유 수영 레인엔 어르신들이 동대문 놀이하듯 줄지어 걷고 있다. 느긋한 물놀이는커녕 짧은 실력의 자유형도 가다 서기를 반복해야 했다. 옆 대여섯 개 레인엔 강습받는 사람들로 50m 레인이 돌고래가 들어온 듯 물이 출렁댔다. 여태 나만 춥다며 보일러 팡팡 돌리고 난로까지 켜고서 움츠렸나 하는 자책까지 들었다.

부산을 얼어붙게 한 날씨는 사람들 움직임마저 둔화시켰다. 내가 사는 동네 골목은 쇠미산으로 가는 길목이다. 아침마다 맞닥뜨리던 산행객이 뚝 끊긴 것만 봐도 그랬다. 나 역시 날씨를 이유로 칩거하다시피 했다. 몸은 점점 굼뜨고 둔해졌다. 이런 추위에 운동을 시도한다는 건 보통 이상의 기민한 결단력이 요구되는 거였다. 대지가 녹는 삼 월에나 해야겠다며 게으름을 합리화했다. 바깥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이러고 있었으니 영락없이 독불장군이었다. 수영장에서 가쁜 숨 몰아쉬는 다양한 연령층을 보자 핑계만 댄 자신이 한심했다.

당장 수영강습을 접수했다. 오래전, 직장을 핑계로 운전면허증도 못 따느냐는 빈정거림에 열 받아 석 달 만에 면허증을 땄을 때처럼. 어깨통증으로 중단했던 수영, 이번엔 돌핀킥까지는 아니더라도 평영까지는 습득하리라. 아니 딱 일 년만 지속해서 자유형, 배영, 평영, 접영으로 자유롭게 레인을 오갈 수 있으면 올 한 해는 성공한 거다. 작심 석 달의 고비만 넘긴다면.

그간 예제 수강한 과목이 여남은 개는 될 거다. 쇠미산과 금정산 등지로 등산하러 다닐 땐 등산복 가게만 눈에 띄었더랬다. 옷장에 등산복 칸을 따로 만들었다. 날이 더워지며 수영으로 관심을 돌렸다. 배에 탄력이 생기고 허리도 날렵해지던 차 목뼈 이상 증상으로 어깨통증과 두통이 덮쳐 그만두었다. 여러 달 치료 받으며 휴식기에 있을 때 도자기에 마음이 꽂혔다. 평생교육원 도자기반에 등록했다. 두 학기 끝내고 손을 뗐다. 흙을 주무르고 나면 어깨가 묵직하니 아팠다. 그래도 항아리며 꽃병 같은 어설픈 결과물 몇 개 건졌다.

그러다 집 가까이에 있는 한 대학 부설 평생교육원에 스포츠댄스 프로그램이 있다는 걸 알았다. 혹했다. 당장 등록하고 새빨간 댄스용 구두도 샀다. 원 투 차차차, 원 투 차차차…. 이런 스텝에 익숙해질 즈음 그만 발목을 삐끗했다. 인대에 이상이 생겼으니 스텝을 밟을 수가 없다. 빨간 구두는 신발장 장식품이 되었다.

뭘 선택할 때 이거다 싶으면 고심하지 않고 결론짓는 편이다. 벌여 놓고 중도 포기한 것들이 태반이라는 게 문제다. 과정에 익숙해지고 진도가 나갈 만하면 귀차니즘이 고개를 치미니 자존심에 금이 갈 일이다.

그 후로도 변덕은 이어졌다. 헬스에서 수채화로, 다시 캘리그래피와 요가로…. 돌고 돌아 결국 수영으로 돌아왔다. 종목을 바꿀 때마다 재료비도 적잖이 들었다. 운동마다 다른 기능성 옷을 입어야 했으며, 발목에 무리가 가지 않는 구두를 신어야 하고, 다양한 색의 물감과 도구가 갖춰져야 그림도 그리지 않겠는지. 수영강습에도 수영복과 수모, 수경을 새로 샀다. 드는 경비만큼 포부도 당찼다. 수채화를 배울 땐 명화 대신 내가 그린 그림 하나 걸고 싶고, 댄스를 할 땐 섹시한 옷을 입고 무대에서 스텝 밟는 상상을 했다. 캘리그래피야말로 출간할 때 멋진 제목체로 숨은 실력을 드러내야지 하는 기대가 컸다. 그러나 이도 저도 이루지 못하고 남은 건 옷이요 재료와 도구들이다.추위에 옹크린 사이 봄이 스멀스멀 다가왔다. 통도사 홍매가 핀 지도 오래, 이는 겨울 패딩 점퍼에 편안하게 늘어졌던 살을 관리할 때가 됐다는 뜻이다. 물살을 숨차게 가르다 보면, 봄이 한창 흥청거릴 춘삼월엔 잠자리 날개 같은 옷을 입을 수 있으려나.

목표치도 정했겠다. 이번에야말로 작심 석 달의 마지노선을 극복할 참이다.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은 창대하리라는 말씀이 부끄럽지 않게.





James Last Orchestra, Country Tr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