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을 거닐다 1-물 위에 뜬 섬 영주 무섬마을 외
여행문화
경북을 거닐다
글, 사진 김나현
물 위에 뜬 섬 영주 무섬마을
돌배나무도 풍경소리 듣는 영주 부석사
산그늘 내리는 봉화 청량사
경북에는 전역이 가 볼 곳인 안동이 있어 영주와 봉화는 이에 묻히는 감이 있다. 그러나 영주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부석사가 무게 잡고 있고, 중요민속 문화재 지정을 예고한 영주 무섬마을과 그곳 외나무다리가 외부인의 발길을 이끈다. 이 외 선비촌, 소수서원, 죽계구곡이 있다.
봉화는 봉화대로 산천이 맑고 산세가 수려해 청량산도립공원이 있으며, 국립 청옥산자연휴양림이 있다. 골이 깊고 수량이 풍부해 구마계곡, 사미정계곡, 백천계곡, 석천계곡 같은 청량한 계곡을 자랑한다. 무엇보다 봉화하면 청량사를 빼놓을 수 없다. 산 높고, 물 맑고, 공기 청정한 영주 무섬마을과 부석사, 봉화 청량사에 다녀왔다. 몇 번째 방문인데 은행잎이 물들면 다시 가고 싶다.
물 위에 뜬 섬 무섬마을
영주 무섬마을은 안동 하회마을, 예천 회룡포, 영월의 선암마을과 청령포와 같이 마을 3면이 물로 둘러싸여 있는 물돌이 마을이다. 17세기 중반에 반남박씨인 박수가 처음으로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삼십여 동이 넘는 전통가옥 중 16동은 조선 시대 후기의 전형적인 사대부 가옥이다. 강을 끼고 마을이 앉은 분위기가 고택 정취로 예사롭지 않다.
몇 해 전 무섬마을 오헌고택에서 하룻밤을 묵은 적이 있다. 옛적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 온돌방의 추억에 푸근하게 젖고, 이른 아침 하얗게 서리꽃 핀 외나무다리를 미끄러질까 떨며 걸은 기억이 있다.
다시 찾은 무섬마을은 여전히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오헌고택도 반가웠다. 이곳을 찾는 이들은 한옥체험보다는 마을 앞 내성천에 놓인 외나무다리를 건너보는 데 더 큰 관심이 있어 보인다. 30년 전만 해도 마을 사람들은 나무를 이어 다리를 놓고 내성천을 건너 뭍의 밭으로 일하러 갔다. 장마가 지면 다리는 불어난 물에 휩쓸려 떠내려갔고, 해마다 다리를 새로 놓았다. 현재의 외나무다리는 지난 350여 년간 마을과 뭍을 이어준 유일한 통로였다. 현대적 교량이 놓였으나 이 다리는 마을 명물로 이어가고 있다.
한 사람이 걸어가기에도 좁은 이 다리에 올라서면 잠깐 어지럼증이 인다. 강물에 반짝이는 햇살이 눈에 일렁거려 다리가 흔들리는 느낌이다. 수량이 많지 않지만 유속이 빠른 중간 지점에 이르면 다리가 후들거린다.
아예 신발을 벗고 강바닥 모래밭으로 들어섰다. 보드라운 모래는 물살에 쓸려가고 굵은 모래가 발바닥을 까칠까칠 자극한다. 감촉은 개운하고 상쾌하다.
솜뭉치 같은 뽀얀 뭉게구름이 핀 여름도 좋고, 나무다리에 서리가 뽀얗게 내린 겨울도 좋다. 마을 앞 강둑을 따라 걸어 보자. 마을 삼면이 강으로 트여 가슴도 후련해지는 이런 마을은 분명 흔치 않다.
돌배나무도 풍경소리 듣는 부석사
부석사에 갈 때는 필히 주차장에서 내려 경내까지 걸어서 가야 절로 가는 운치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은행나무가 줄지어 선 길을 따라 20분여 걸어가다 보면 자연히 절을 대하는 자세가 가다듬어진다. 언젠가 친구들과 갔을 때 택시를 타고 절 앞까지 갔다가 크게 실망했다. 이 부석사뿐 아니라 모든 절은 일주문 밖에서부터 걸어가는 게 방문하는 자세가 아닐까 한다.
무량수전은 부석사의 주불전으로 아미타여래를 모신 전각이다. 아미타여래는 끝없는 지혜와 무한한 생명을 지녔으므로 무량수불로도 불리는데 ‘무량수’라는 말은 이를 의미한다. 무량수전은 봉정사 극락전, 수덕사 대웅전, 강릉 객사문 등과 함께 고려 시대 건축으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부석사에 갈 때는 안양루를 통과해 무량수전을 대면하기 전에 계단에 서서 뒤돌아봐야 한다. 눈 아래로 펼쳐진 소담한 절 분위기를 다시 보게 될 것이다.
부석사 마당 한쪽 나이 묵어 보이는 배나무에 어른 주먹보다 조금 큰 배가 주렁주렁 달렸다. 하나 따서 먹고 싶을 만큼 노랗게 익어가고 있다. 이쯤에 서서 먼 앞을 바라보면 경내 여러 건물과 멀리 소백의 산봉우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스라이 펼쳐진 소백산맥이 시원하고 장대하다. 봄가을에도 좋지만, 특히 말간 겨울 운치는 어떨까 눈에 담고 싶어진다.
건축가들에게 한국 전통 건축의 특성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사찰을 말하라면 대개 영주 부석사를 첫손가락에 꼽는다고 한다. 그만큼 부석사는 전통 건축의 멋과 맛을 모두 갖추었다는 평이다.
부석사를 찾는 이유는, 화려하지 않고 깊은 역사를 품은 데서 우러나오는 고즈넉한 절 분위기와 눈앞에 펼쳐지는 경관 때문이 아닌가 한다.
산그늘 내리는 청량사 삼각우송 아래 앉아
부석사에서 청량사로 가는 길은 굽이굽이 산속이다. 봉화 시내에서 청량사로 오는 길과 부석사에서 오는 길은 서로 반대방향 길이다. 어쨌거나 우람하고 정답게 다가오는 산세에 홀리기는 마찬가지다. 청량사 앞 주차장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네 시, 산 속이라 그런지 벌써 해가 저무는지 햇살의 농도가 차분하다. 일주문을 통하는 가파른 길로 올라갈 자신이 없어 원효대사 구도의 길인 경사가 완만한 산 중턱 길을 택한다.
이 길 끝 지점 산 꾼의 집을 지나면 청량사 경내가 앞에 열린다. 청량사만큼 옴폭 산자락에 안긴 절도 드물 것이다. 햇살이 경내 어디 한 곳 빠짐없이 따사롭게 내리쬐는 절이다. 산그늘은 이미 절까지 내려왔지만, 유리보전 약사여래불에 묵례하고 삼각우송 아래에 자리 잡고 앉는다. 탑을 등지고 유리보전을 마주하고 앉았다. 세 가지를 늠름하게 뻗친 청량사 상징인 삼각우송 푸른 기운이 전신을 감싸는 듯하다.
이제 절에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절과 내가 마주한 귀한 자리를 털고 일어서기 아쉽다. 앉은 그대로 날이 저물면 적막한 절에서 밤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아쉬움을 접고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이라는 현판이 걸린 찻집 안심당을 지나 내려온다. 걸음을 재촉해 일주문을 통과하니 산그늘이 산 아래까지 다 덮었다.
바깥세상 바람도 비껴갈 듯 고요한 청량사 여운이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