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문화』

임청각에서 하룻밤

서정의 공간 2020. 2. 7. 12:31

 

 

 

 

경북을 거닐다

안동, 임청각에서 하룻밤

 

, 사진 김나현

 

 

안동호의 상징 월영교를 눈앞에 둔 임청각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월영교와 월영교의 쉼터 누각 월영정은 덤으로 그곳에 있었을 뿐이고, 역사 깃든 백 칸짜리 집 문간방에서나마 하루를 묵는다는 건 온몸이 뿌듯해지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경북 안동 출신인 석주 이상룡 선생은 오직 나라를 다시 찾겠다는 일념으로 만주로 망명을 결행해 전 가족과 재산을 독립운동에 바쳤던 상해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냈던 한말의 독립운동가이다. 이상룡 선생의 생가 임청각은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대한민국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상징하는 공간이라고 규정하면서 그 위상이 더욱 높아진 바 있다.

 

안동여행을 결정하고, 이 임청각에서 숙박을 할 수 있다기에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하룻밤을 묵기로 예약하고 떠났다. 안동이야 워낙 갈 곳 볼 곳이 많아 수시로 가는 곳이지만, 임청각이라는 역사적인 장소에서 하룻밤을 묵는 자체에 큰 의미를 두었다. 무엇보다 다음날 조식으로 11상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하룻밤을 자는 데 쐐기를 박게 했다.

 

대중교통 편으로 일행 세 명이 임청각에 도착하니 우수 전통한옥문화체험 숙박시설 명품고택 안동 임청각이란 현판이 객을 반긴다. 관리하는 분께 인사부터 올리니 우리가 묵을 방을 안내한다. 옛 그대로인 문살문을 열자 아씨가 묵었을 법한 정갈한 방에 이불이 깔끔하게 깔려있다. 수놓은 가리개와 뽀얀 베개와 공단이불에 하얀 이불홑청, 태극모양 장식, 족두리, 쇠고리 달린 쪽문까지. 장작불로 방을 데우기에 밤새 냉기는 덮쳤지만 흙벽 냄새와 고향 집 같은 안온함에 젖어 행복한 밤을 보냈다.

집 개조를 하지 못해 화장실을 외부로 나와야 했지만 그런 불편함 정도는 충분히 상쇄할 만큼 독립운동가의 정신을 느낀 시간이었다. 특히 다음날 아침에 받은 일인상으로 차려진 밥상은 직접 담근 장아찌와 찬으로 정갈하기 짝이 없는 식단이었다. 어쩐지 조신하게 먹어야 할 것 같아 얌전하게 감사하고 음미하며 먹었다.

 

특히 집 앞을 나서면 몇 미터 앞에 흔히 보지 못하는 탑 하나가 우뚝 솟아 있는 걸 볼 수 있다. 국보 제16호로 국내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전탑으로 16.8m 높이의 탑이다. 일제가 한국인 정신을 꺾을 요량으로 마을을 가로질러 놓은 철도가 임청각 바로 앞으로 지나는데 전탑은 바로 철길 아래에 위치했으며, 잠을 잘 때는 밤새 화물차가 지나가 잠을 설칠 지경이었다. 이 마을의 운세가 제대로 흘렀을 리 없을 것 같아 화가 솟구쳤다.

 

안동 하면 하회마을만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안동에는 하회마을 외에도 전통과 선비정신이 넘치는 볼거리가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이라는 소개말처럼 안동에는 병산서원, 도산서원, 봉정사를 비롯해 국학진흥원이 있으며 월영교는 2003년 개통된 이후 안동의 명물로 자리 잡았다. 사진을 찍는 이들이 새벽안개에 잠긴 월영교를 찍기 위해 몰려드는 곳이기도 한데, 나도 사진사들 틈에 끼어 사진을 찍으러 온 적이 있다. 다리 중간 지점쯤에 있는 정자 월영정에 다다르면 안동호의 수려한 모습이 한눈에 담긴다.

 

이번 안동 여행에서 뭉클하게 다가온 공원이 있다. 바로 원이엄마 테마공원이다. 이 공원에서 키보다 높고 옆으로 널찍한 커다란 바위 면에 빼곡히 적힌 글씨를 볼 수 있는데, 이 글 내용이 바로 고성이씨 이응태의 아내인 원이 엄마가 쓴 편지다. 1998년 정하동 택지개발 당시 지금 조성된 공원에서부터 약 500m가량 떨어진 곳에서 편지 한 장이 발견되었다. 원이 엄마가 남편 이응태의 병을 낫게 하려고 자신의 머리카락과 삼 줄기로 신발을 삼는 등 온갖 정성을 다했으나 끝내 어린 아들과 유복자를 두고 세상을 떠났는데, 그 안타까운 마음과 사모하는 정을 글에 표현하고 있다. 이 편지는 다른 출토 유물과 함께 안동대학교 박물관에 소장이 되어 있다고 한다. 편지의 일부를 옮겨본다.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당신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왔고

또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왔었나요.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고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어찌 그런 일들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가요.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 해도 나는 살 수 없어요.

빨리 당신께 가고 싶어요. 나를 데려가 주세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가 없고

서러운 뜻도 끝이 없습니다.

....

하고 싶은 말 끝이 없어 이만 적습니다.

 

 

 

독립운동가의 생가 임청각에서의 하룻밤, 원이 엄마의 편지로 하여 안동 여행 후유증이 길게 꼬리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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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신문 오피니언 칼럼 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