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감단상-찐쌀 세대 팝콘 세대
촌감단상
찐쌀 세대 팝콘 세대
김나현
주걱을 갖다 대는 순간 탄식이 새어 나온다. 또 질다. 떡밥이다. 몇십 년간 해 온 밥이건만 아직도 진밥과 된밥을 오간다. 진밥을 한 솥 해놓고 누구에게 불평할 수도 없다. 다 먹을 때까지 툴툴댈 수밖에는.
친정 노모는 진밥을 선호하신다. 지금 생각해보면 젊었을 적부터 틀니를 해 미각을 잃었고, 음식을 씹는 일이 불편하셨던 게다. 진밥은 어머니처럼 나이 든 세대가 좋아한다고 멋대로 인식해 왔다. 한데 젊은 딸도 진밥이 좋다고 말하는 걸 듣고 진밥 선호 여부로 세대를 가름한 판단 오류를 바로잡았다.
눈앞에서 확연한 세대 차이를 본 적 있다. 연령대가 다양한 문우 몇 명과 영화를 보러 갔을 때다. 나이 차이가 나 봐야 쉰을 다 넘어선, 조금 더 먹고 덜 먹은 정도로 지긋한 연령대였다. 실내에 불이 꺼지고 스크린에 광고가 나오자 관람 자세가 나오기 시작했다. 영화관에서는 먹을거리가 있으면 자리에 앉자마자 먹게 되는 좀 특이한 경향이 있다.
아니나 다를까.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리더니 나를 사이에 두고 잠깐 사이에 양쪽에서 진풍경이 벌어졌다. 일행 누군가가 가방에서 비닐봉지를 꺼내 뭔가를 조심조심 전달했다. 전혀 생각지 못한 찐쌀이다. 찐쌀을 한줌씩 건네받은 여자들 입이 동시에 오물거렸다.
때맞춰 오른쪽에 앉은 젊은 여자 쪽에서 고소한 냄새가 솔솔 풍겼다. 힐끗 고개 돌려보니 큰 팝콘 그릇을 안고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먹고 있다. 그걸 보는 순간 풋, 하고 웃음이 터졌다. 찐쌀과 팝콘…, 이보다 적나라하게 세대 차이를 드러낼 수 있을까. 구시대와 신시대가 나를 경계로 확연히 갈렸다. 찐쌀 세대를 마치 딴 세상에서 온 사람 보듯 보며 혼자 웃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일행은 화면에만 시선을 두었다. 극장에서 찐쌀을 먹는 우리를 보면 젊은 축이 뭐라고 할까 하고 괜스레 신경이 쓰였다.
세대 차이를 나이로만 구분할 성질은 아닌 것 같다. 행동이나 입는 옷, 말에서 불거지는 미묘한 사고의 차이는 일상에서 불쑥 맞닥뜨린다. 이는 그 연륜이 처한 환경과 정서의 차이이기도 할 것이다. 찐쌀을 먹는 세대와 팝콘을 먹는 세대의 정서가 같을 리 없다. 짭짤달곰하여 쉼 없이 당기는 영화관 팝콘은 먹고 나면 갈증이 인다. 그에 비해 찐쌀은 처음에는 아무런 맛이 없다가 입안에 머금고 조금씩 아껴 오물거리면 곧 구수한 쌀 물이 입 가득 고인다. 이 맛을 팝콘을 먹는 아이들이 알 리 없다.
양쪽에서 벌어진 희한한 풍경은 영화에 차츰 몰입하면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날 영화가 묵직한 주제라 나란히 앉은 다른 세대의 여자들 사이엔 정적이 흘렀다. 먼 세월의 간격을 뛰어넘어 같은 감정 속에 있음이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