⓵ 경주 양동마을-아침 안개 드리운 물봉동산의 가을
김나현의 한옥마을 가는 길 ⓵ 경주 양동마을
아침 안개 드리운 물봉동산의 가을
김나현 글·사진
한국 정서를 대표하는 것 중 전통 한옥은 단연 선두가 아닐까 한다. 한옥이 품은 은근함, 온돌방과 마루는 아련한 향수를 일으킨다. 그 아늑함이 그리울 때 더러 한옥마을을 찾고 하룻밤 자기도 한다. 오래된 한옥은 욕실이 대개 바깥에 있고 웃풍에 얼굴도 시리지만, 심신이 얻는 푸근함이 크기에 문제 될 건 없다.
남쪽지방 단풍이 절정이던 11월 초순에 배낭을 메고 나섰다. 목적지는 세계유산 양동마을이다. 경주 보문단지에서 자고, 다음 날은 일찌감치 운곡서원 은행나무 아래 퍼더앉자던 일정이었다. 이 계획을 양동마을에서 하룻밤을 더 묵는 거로 불쑥 바꾸었다.
-운곡서원 가는 길의 풍경들
다음날, 보문단지에서 일찌감치 운곡서원으로 가는 길에 버스를 잘못 탔다. 서원을 두세 정류장 쯤 남겨둔 곳에서 버스가 회차한다고, 걸어갈 거리는 아니라고 했다. 잘못 배달된 택배처럼 낯선 시골에 불안하게 던져져 두리번거리니 화산1리라는 간판이 보인다. 다음 차편을 느긋하게 기다리며 한적한 마을을 소요하고, 예쁜 들꽃 그림에 반한 ‘카페 안길’도 구경하고, 담쟁이가 벽을 장식한 샛노란 창고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여행자 흉내도 냈다. 그러다 지붕이 낮은 조그만 함바 식당에서 정식을 먹었는데, 식당 주인이 차로 운곡서원까지 데려다 준다. 여행자가 예상치 못한 유쾌한 체험이다.
서둘러 나무를 찾아가니 그 앞에 많은 카메라 삼각대가 서 있다. 해의 농도와 빛살의 강도에 따른 절정의 순간을 기다릴 터. 이는 곧 최고의 시간대라는 뜻, 마음이 급했는데 다행이다. 가을 햇살을 역광으로 받은 은행잎이 투명한 순금 빛이다.
경주 강동면 왕신리 운제산 자락에 앉은 운곡서원은 1784년에 안동권씨 시조 권행의 공적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했다. 이 서원의 가을은 우람한 둥치의 은행나무가 방점을 찍는다. 360년 수령의 은행나무 단풍은, 유연정을 배경으로 가히 절경을 이룬다. 오래된 서원과 고목, 먹색 기와와 의젓한 은행나무가 가을 수채화 한 폭을 제대로 그려낸다.
이곳을 찾는 이들로 인해 하루에 몇 회 들어오는 버스가 제시간에 들어와서도 차를 돌릴 공간이 없다. 주차된 차의 주인을 부르고, 오가던 차들이 줄줄이 후진하고서야 겨우 몸을 돌린 버스를 향해 기다리던 사람들이 박수를 보냈다. 버스 출발이 30분이나 지연됐지만, 누구도 불평하지 않는다.
-양동마을 고택 무첨당에서 차를 마시고
이런 노정의 사연을 안고 양동마을로 왔다. 마을 입장료가 4,000원이다. 마을 초입, 1909년에 소학으로 건교했다는 양동초등학교는 나무도 위풍당당하다. 쭉쭉 뻗은 메타세쿼이아 몇 그루가 모조리 진흙 색으로 물들어 불길이 치솟는 듯하다. 숙소인 물봉동산 황토방 할머니는 객이 언제 오는가 하고 전화가 온다. 그래도 저녁을 먹어야겠기에 마을 입구 거림골식당으로 들어섰다. 식당 간판을 내걸었지만 시골의 가정집이다. 잔치국수와 파전을 주문했다. 음식이 나오자 술꾼처럼 동동주 생각이 치민다. 한 잔씩만 줄 수 있겠냐고 묻자 흔쾌히 그러마고 한다. 친구와 건배하고 동동주 한 모금을 들이키고는 동시에 숨이 트이는 탄성을 내뱉는다. 하루를 마감하며 마시는 일명 마감주였다.
동절기 저녁은 다섯 시만 돼도 쉬 어둑해졌다. 작은 다리 두 개를 건너서 무첨당으로 쭉 오라던 말에 팻말을 따라 고택 무첨당으로 불쑥 들어섰다. 후덕해 보이는 안주인이 나오더니 자기네는 숙박하지 않는단다. 다시 길을 돌아 황토방을 찾는다는 게 이번에는 무첨당 후문이다. 뭣도 모르고 간 이 무첨당은 1540년대에 지은 양동마을의 대표 고택이었다. 향단, 관가정과 함께 국가 보물로 지정되었음도 알았다. 보물인 고택이 민박을 받을 리 없다. 무첨당 쪽으로 오라는 말이었다. 다음날 무첨당 마루에 앉아 꽃차를 마시는 행운을 누렸다.
어스름한 언덕에서 기다리던 할머니를 따라 숙소로 가니 양동마을 산꼭대기 그 너머다. 150여 호 된다는 마을이 산 너머에까지 있을 줄은 몰랐다. 불빛이 새어 나오는 소복한 초가 두 채가 동화 속 한 페이지처럼 다소곳하다. 하나 딸린 아래채 문을 여니 딱 두 사람이 잘 만한 방이다. 장작불로 미리 데운 아랫목에 이불을 펴고 온기부터 가두었다. 쪽창 밖은 끝도 보이지 않게 펼쳐진 양동뜰이다.
이곳도 화장실은 안채에 있다. 한밤중에 친구를 깨워 마당 한쪽에서 볼일을 보곤 하늘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청명한 하늘에 별사탕 같은 별이 총총하게 떠서 훤히 내려다보고 있는 게 아닌가. 내의 바람으로 옹크린 채 별자리를 찾던 밤의 고요는 깊었다.
양동마을은 경주손씨와 여강이씨 두 가문이 500여 년간 대를 이어 현재까지 살고 있다. 2010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옛 명문대가의 자취와 삶이 밴 고가뿐 아니라, 빈집 초가지붕도 다 이어놓아 마을이 괴괴하지 않다. 전통마을 중에서도 역사가 가장 오래고, 규모나 원형 면에서도 보존이 가장 잘 된 조선 시대 양반 씨족 마을이다.
무첨당(보물 제411호), 향단(보물 제412호), 관가정(보물 제442호), 손소영정, 서백당과 이 외 심수정, 강학당 등 지정문화재가 수두룩하다. 이는 그만큼 역사가 두루 깊다는 뜻도 된다. 마을이 워낙 넓어 탐방 길도 일곱 갈래다. 앞산에서 뜬 해가 마을 꼭대기를 비출 무렵 산책에 나섰다. 무첨당에서 대성헌, 물봉고개, 물봉동산, 영귀정, 설천정사로 이어지는 길.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물봉동산으로 가는 길가엔 구절초가 가을 끝물로 피어있다. 집마다 있는 작고 예쁜 화단, 빨간 감이 조롱조롱 달린 감나무, 짙붉은 맨드라미, 아침 안개 속에서 윤곽을 드러내는 고택 지붕…. 전통마을의 초겨울은 정갈하고 정답다. 안개 서린 마을 정경이 수묵화처럼 차분하다. 양동마을을 이루는 것 중 오랜 역사가 중심 뼈대라면, 고택마다 우람하게 선 고목은 마을을 한결 고풍스럽게 한다. 사진을 찍으면서도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눈으로 보는 풍경에 미치지 못할 게 빤하기 때문이다.
숙소를 나설 무렵, 무첨당과 인연이 있는 이에게서 깜짝 연락이 왔다. 무첨당 안주인이 다음날 있을 시제 장을 보러 나서는 길인데 잠깐 짬을 낼 수 있겠다는 기별이다. 두 번 없을 기회를 놓칠세라 서둘러 무첨당으로 들어서니 전날 두 번이나 대면한 종부께서 환히 반기신다. 회재 이언적 선생의 17대 종부시란다. 시인으로도 활동하는 분이었다.
무첨당 현판이 걸린 마루에서 맑은 와인 빛깔이 나는 맨드라미 차를 마셨다. 그러고 보니 마을에는 유독 맨드라미가 많았다. 조고만 찻상에 놓인 맨드라미 차의 향과 붉은색 차, 오백 년 마루에 들이치는 노란 가을 햇살은 오래도록 기억될 무첨당 정물화다. 그의 시집 <양동 물봉골 이야기>와 <양동 물봉골 이야기 둘>도 선물로 받았다. 시집에는 양동마을 고택과 종부로 살아가는 일상, 이웃 사람들의 이야기와 마을에 흐르는 전통과 범절, 정신까지도 담겨 있다.
마을을 나오는 길에 또 천막 카페로 들어갔다. 전날 파전과 잔치국수를 먹은 집이다. 앞이 트인 두세 평 카페에 앉으니 보물인 향단 기와지붕이 액자 속 그림처럼 눈에 든다. 해가 중천으로 오르기도 전에 탐방객이 보이기 시작하고, 우리는 마을 사람처럼 여유작작하게 이들을 구경했다. 그들이나 우리도, 수백 년이나 앞서 존재한 마을을 어찌 한눈에 다 읽겠는가. 오랜 마을에서 하루나마 묵고, 그곳 된장찌개를 먹은 거로 위안을 삼는다.
안강으로 나와 경주역으로 가는 길은 먼지가 폴폴 날리는 들길이다. 찻길 따라 철길도 나란히 달린다. 불쑥 내리고 싶던 충동이 인 들녘을 달릴 때, 누군가가 배웅을 하는 듯해 앉은 뒷자리에서 자꾸 뒤쪽 차창을 돌아보았다. 낭만에 취한 그때까지도 곧 맞닥뜨릴 일은 전혀 생각지 못한 채. 무궁화호 좌석에 앉았다가 자리를 뺏기고서야 친구가 하루 전 날짜로 기차표를 끊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여행은 이런 에피소드로 기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