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영주 무섬마을-수려한 마을에 옛 향기 풍기고
김나현의 한옥마을 가는 길 ⓶ 영주 무섬마을
-수려한 마을에 옛 향기 풍기고
글, 사진 김나현
선비의 고장, 역사의 고장인 경북지방. 남단의 경주부터 시작해서 청도, 상주, 안동, 영양, 문경, 영주, 봉화…, 다 그곳만의 풍취와 고유의 전통을 간직하고 있다. 이 경북에만 낙동강 강줄기가 휘돌아 흐르는 몇 마을이 있다. 일명 물돌이 마을로 안동 하회마을, 예천 회룡포와 함께 영주 무섬마을이다. 이 중 영주 전통마을인 무섬은 내성천이 마을을 감싸고 흐르는 모습이 물 위에 떠 있는 섬 같다고 해서 물섬(무섬)으로 불렸다.
내성천에 구불구불 휘어져 놓인 외나무다리의 예스러운 풍경은 종적을 감춘 동심마저 끌어낸다. 마을로 들어가는 수도교에서 보면 강둑을 울 삼아 자리 잡은 마을 앞으로 넓은 천이 흐르고, 강변엔 모래밭이 들판처럼 펼쳐졌다. 이렇게 수려한 밑그림에 강을 가로질러 놓인 나무다리를 보노라면 마음 저 깊숙이에서 아득한 향수 같은 게 꿈틀댄다. 이 무섬 다리에서 맞았던 일출과 일몰의 정취는 물소리도 숨을 죽인 정적이랄까. 고독이랄까. 근원 없는 슬픔 같은 것을 마음에 드리웠다.
어떤 목적지를 정하고 그곳에 가면 딱 그곳만 보는 게 아니다. 주변 볼거리를 두루 탐방하며 여행하는 만족감을 높인다.
나무 숯불에 쌀밥을 해 먹었으며 신이 알려준 명당복지였다는 영주. 이 영주에는 소수서원이 있고, 소수서원의 정신을 계승한 마을 선비촌이 있다. 무량수전 앞마당에서 먼 능선과 봉우리가 겹겹이 펼쳐진 장관을 봐야 하는 부석사, 선덕여왕 연간에 창건한 희방사, 과거를 보러 가며 넘었던 고개 죽령옛길이 있다.
부석사 돌배나무 아래쯤에서 보는 소백산 능선
최초의 사액 사원으로 숱한 선비를 길러낸 소수서원에서 솔바람을 쐬고 부석사로 이동했다. 유홍준 교수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집, 사무치는 마음으로 가고 또 가고’라고 한 부석사다. 나 역시 갈수록 볼수록 이끌리는 절이다.
부석사에 갈 때는 은행나무 길을 명상하듯 걸어가야 한다. 언젠가 택시를 타고 부석사 경내에 덜렁 내렸다가 아무것도 보지 못한 허전함으로 내내 후회한 적이 있다. 일주문을 지나는 길은 절에 가는 마음의 가닥을 잡는 길일 터. 절 입구 사과밭 진입로로 들어서서 일주문도 천왕문도 지나 무량수전을 대면할 일이다.
부석사 주불전인 무량수전은 배흘림기둥으로 유명하다. 이는 최순우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가 한몫했다고 본다. 글 중 <부석사 무량수전>은 ‘……, 무량수전, 안양문, 조사당, 응향각들이 마치 그리움에 지친 듯 해쓱한 얼굴로 나를 반기고,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로 시작한다. 배흘림은 중간 정도가 직경이 가장 크고 위와 아래로 갈수록 직경을 점차 줄여 만든 기둥으로 곡선의 체감을 갖는다. 그리스 파르테논신전을 받친 배흘림기둥이 아크로폴리스에 우뚝 선 웅장함으로 기억된다면, 무량수전 기둥은 처마 아래에서 한아름에 안길 듯 아담하고 정겨운 감이 있다.
무량수전 앞마당 귀퉁이쯤에 무심히 지나치기 쉬운 돌배나무가 있다. 늦여름이면 돌배가 조롱조롱 열리는 이쯤에 서서 멀리 앞을 우러르면 아스라이 펼쳐진 산봉우리들이 수묵화처럼 아슴푸레하고도 장대하다. 이 자리에서 보는 석양 무렵은 맞닿은 먼 하늘과 산이 통째로 물들어 가슴 서늘한 감동을 안긴다. 사진 찍는 이들이 이 정경을 담으러 찾는 곳이기도 하다.
추억하는 속도로 걷게 되는 무섬마을과 외나무다리
어느 해 겨울, 무섬마을 오헌고택 아궁이가 딸린 방을 예약하고 영주로 떠났다. 구들이 놓인 온돌방 예약은 며칠 전에 해야 한다. 집주인에게 냉기 도는 온돌방을 따뜻하게 데워달라는 주문이다. 어떤 지역을 여행할 때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여정이 지루할 틈이 없다. 버스를 기다리며 현지인과 대화하다 보면 예정에 없던 볼거리가 생기고 일정이 변경되는 일도 종종 생긴다.
그때 부석사에 먼저 들렀다가 버스를 타고 무섬으로 왔다. 오헌고택에 배낭을 내려놓기 바쁘게 강둑 너머로 내려갔다.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경포대해수욕장에서 바다를 보고 내달렸을 때처럼. 마음엔 온통 다리 생각뿐이었다.
다리 폭은 딱 한 사람이 걸어갈 만큼이다. 다리에 올라서니 가슴이 붕 뜨고 소녀가 된 기분이다. 그런 기분을 한껏 누리고 싶어진다. 친구들은 거리를 두고 물에 손을 담그거나 강 중간에서 감상에 젖어 있다. 숙소로 갈 생각도 잊고 있을 때 어느 새 겨울 해가 기울고, 뜻밖에 다리 위에서 일몰을 맞았다. 물고랑도 강변도 붉게 물들고 다리 위에 선 사람들이 실루엣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이성이 잠깐 마비된 시간이었을까. 다들 함묵한 찰나를 카메라에 담으랴, 화닥화닥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랴….
뜨끈한 방에 등을 대고 누우면 한없이 편안해지는 게 온돌방 정서일 것이다. 얘기꽃을 피우던 그 밤은 짧기만 했다. 창호지가 밝아올 무렵 입김을 뿜으며 서둘러 강으로 나갔다. 찰찰 흐르는 물소리만 들리는 겨울 아침, 다리 위엔 딴 세상으로 가는 길처럼 서리꽃이 뽀얗게 피어있었다. 서리를 밟고 올라섰다. 겨울 물소리에 세상이 처음 열리듯 정신이 명징해졌다.
이 무섬에 사람이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게 1660년대다. 반남박씨와 예안김씨 두 집안이 지금까지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다. 전통가옥이 대부분인데 이 중 16동이 조선시대 후기의 사대부 가옥이라고 한다. 특히 가장 오래된 한옥인 해우당과 만죽재는 무섬마을의 자부심이다. 만운고택은 시인 조지훈의 처가라는 기록이 있다. 시인도 마을 강변을 거닐며 시를 지었으려니 여기자 바람도 예사롭지가 않았다. 집수리할 때 땅에서 엽전이 1t이나 나왔다는 부잣집 김위진 가옥도 있다. 이런 마을 돌담을 따라 걷다 보면 각자 추억에 젖어 걸음도 느려진다. 무던한 선대 같은 섬계초당과 일계고택 앞에 서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전하는 숱한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다.
지난해 여름, 계획에 없이 다시 무섬을 찾았다. 오헌고택에 눈인사를 건네곤 강변으로 내려갔다. 허리께 깊이의 물에 빠져도 상관없을 거라 신발을 벗어 들고 양산을 쓰고 다리를 걸었다. 강물에서 튕겨 나온 여름 햇살이 눈을 강렬하게 찌르고, 중간쯤에 이르면 물살이 제법 빨라 어지럽다. 마주 오는 사람과 비낄 수 있는 비껴다리쯤에서 모래밭으로 내려서면 눈에 들어오는 건 하늘과 강뿐이다. 무섬에 오면 남자, 여자, 어린이, 어른 할 것 없이 다리로 올라서고, 그 순간엔 모두 자기만의 동화 속 세상으로 들어간다.
그날 이 외로운 다리에 이야기 하나를 엮어주고 왔다. 사랑하는 이와 나란히 다리를 건너면 그 사랑이 깨지지 않고 영원할 거라는 전설 아닌 전설이다. 다리가 이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으면 좋겠다.
솜뭉치 같은 뭉게구름이 핀 여름이나, 서리 내린 겨울, 또 온 마을이 단풍에 덮인 가을이야 말할 것도 없다. 어느 계절이든 마을 앞 긴 강둑길을 걸으며 머릿속을 하얗게 비워볼 일이다. 그런 다음 무섬식당 마당 탁자에서 청국장 정식에 도토리묵을 먹는 거다.
수도교를 나올 때면 멀리 시집가는 사람처럼 자꾸 뒤돌아봐진다. 아늑하게 앉은 친정 같은 마을도, 강 저만치에 놓인 외나무다리도 마지막인 듯 눈도장을 찍는다. 여느 여행지에서처럼 다음에 또 오리라고 막연하게 기약하면서. 설령 다음이 없을지라도, 언젠가는 아마도 다시 올 수 있을 거라는 꿈을 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