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신문 칼럼

[감성터치] 취향의 이동

서정의 공간 2021. 9. 28. 07:50

[감성터치] 취향의 이동 /김나현

  • 김나현 수필가, 여행작가
  •  |   입력 : 2021-08-08 19:44:52
  •  |   본지 22면
     

    한더위 속에 있다. 바다를 접한 부산에 살며 누리는 이점은 늘 바람이 불어 공기가 순환한다는 점이다. 공기 흐름이 멎은 듯 갑갑한 내륙에 비해 살만하다. 그 대가로 바닷바람이 머금은 습기에는 무던하게 적응해야 한다.

    고온다습한 때일수록 주변이 정돈되어야 견딜 만하다. 늘 보던 집기들, 비뚤어진 액자며 5도쯤 기운 벽시계를 바로 잡는다. 거실 차탁도 벽과 평행으로 맞추고, 책상 위에 놓인 들쭉날쭉한 책 모서리도 가지런히 한다. 벗어둔 대로 널브러진 신발을 정돈하고, 내친김에 이불장 문도 연다. 뒤죽박죽인 이불을 다 끄집어 내린다. 계절별로 구분해 차곡차곡 개어 넣으면 속 더위가 가시는 듯 개운하다.

    천장 수리 일로 인테리어 업자를 부른 적 있다. 그때 그가 일을 끝내고 집안을 휘 둘러보고는 한 말이 있다. 모든 게 정렬이 되어 있다고. 그 말인즉, 당신 성격이 결벽이 아닌가 하는 뜻으로 들려 주절주절 변명했다. 강박증이 있는 건 아니다. 정렬에서만 그럴 뿐이다. 자고 난 이불도 흐트러진 대로 두며, 치약도 아무 데나 눌러 짠다. 이따금 발작하는 정돈 증세는 갱년기 증상처럼 부지불식간에 덮친다. 불면으로 뒤척일 때나, 어떤 감정이 정리되지 않을 때는 꼭두새벽에도 일을 벌인다.

    가장 신경 쓰이는 곳은 옷장이다. 옷장은 옷으로 미어터지는데 계절이 바뀌면 입을 옷이 없다. 특별한 날 입은 옷이라서, 딸이 사 준 옷이라서, 또 입을 거라고 버리지 못한다. 아는 누구는 옷을 사면 다른 하나를 내놓는다고 하고, 어떤 이는 두 해간 입지 않은 옷은 과감히 버린다는데. 십 년을 입지 않은 옷도 수두룩하다. 유행의 희생자가 되지 말라고도 하지만 어느새 돌아가는 눈은 어쩔 수 없다.

    옷을 보면 취향의 변화가 보인다. 주류였던 갈색이 청색과 녹음 계열로 돌아섰다. 희붐한 색보다 선명한 원색 쪽으로 바뀌었다. 선명함을 좇는 건 나이 들어가는 칙칙함을 포장하려는 안간힘이지 싶다. 꽃도 채송화 봉숭아 접시꽃 같은 고향 집 마당에서 보던 꽃들이 그저 좋았다. 요즘은 처음 보듯 새삼스레 눈에 띄는 꽃이 생겨난다. 노랑 수술을 짙붉은 꽃잎으로 나풀나풀 감싼 작약이나 땡볕을 자양분 삼아 고결한 꽃을 피우는 연한 홍색의 연꽃, 집 앞 화단에 무더기로 피어 향기로 존재를 알리는 분꽃…. 뜨거운 여름에 정염을 토하는 원색 앞에서 걸음을 멈추게 된다. 생의 시기에 따른 취향의 이동은 세상을 관조하는 시각의 변동인가 싶다.

    좋아하는 음식도, 즐겨듣는 음악 장르도 바뀐다. 한때 뉴에이지의 신비함에 빠졌다. 요즘은 뭐니해도 트로트다. 맛있는 것도, 먹고 싶은 것도 없다던 돌아가신 아버지 말씀이 이따금 떠오른다. 그때는 그 말씀이 얼마나 서글픈 말인가를 몰랐다. 맛없는 음식이 없을 때였으므로.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아버지 생의 길을 종종걸음으로 따라가고 있다. 어느 날엔가는 휴대폰 속 전화번호를 정리한다. 가입한 카페나 밴드 목록도 단출하게 줄인다. 대부분 문학과 그 언저리 인연이다. 여행이나 트레킹을 목적으로 가입만 해놓은 곳은 깔끔하게 연줄을 끊는다.

    이런 느닷없는 변덕은 계절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어느 날엔 그간 덮고 잔 이불이 칙칙해 보였다. 결혼할 때 시어머니가 해 준 목화솜 이불에 숨통이 막혔다. 한 번 그리 생각하자 볼 때마다 눈엣가시다. 속 삶을 모조리 엿본 이불이 아닌가. 이불을 덮고 잔 옛 시간이 일렁거리면 내놓을 수가 없다. 결국, 지질구질한 이불 몇 채를 수거업체에 내놓았다. 살아온 한 토막을 정리한 기분이다.

    내친김에 부산진시장에 갔다. 이불 가게에 들어서니 신천지가 따로 없다. 친구는 보들보들하고 쾌적한 여름 이불 네 세트를, 나는 깔고 덮을 한 세트를 샀다. 꿉꿉한 이불을 보송한 이불로 갈았다. 꽃밭 꿈이라도 꿀 듯 상큼하다. 취향 저격이다. 이 작은 변화가 생기를 리필해 준다. 돌아보면 아득바득 아낄 줄만 알았다. 천생 평생을 그리 산 내 어머니의 모습이다. 더러 취향이 변덕을 부려도 괜찮겠다. 추레한 일상을 재생시켜줄 것이매. 단, 사람에 대한 취향만은 꿋꿋한 외길이었으면 싶다.

    수필가·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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