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신문 칼럼
[감성터치] 햇살도 갈무리하는 때
서정의 공간
2023. 12. 5. 09:47
[감성터치] 햇살도 갈무리하는 때
김나현 수필가·여행작가
- 김나현 수필가·여행작가
- | 입력 : 2023-12-03 18:53:47
- | 본지 22면
무싯날 장에 가듯 옥상으로 간다. 밤새 널어둔 무말랭이 안부를 살피고 뒤적여 주려 함이다. 탁 트인 하늘에서 내리쬐는 볕살은 순도가 높다. 구름 사이로 내리꽂히는 빛내림처럼 화사하다. 가끔, 이웃집 이불이 널리는 여름과 달리 빨랫줄이 한가하다. 볕에 색이 바랜 빨래집게만 듬성하게 걸려 여유롭다.
해넘이께 같은 이즈음 햇살은 유독 아깝다. 간당간당하게 남은 올해 시간 같다. 옥상에 서면 어김없이 고향 마당에서 하늘을 우러르는 기분이다. 빈 빨랫줄만 봐도 유년 속 풍경이 단숨에 달려나온다. 비바람에 몸통이 다 삭은 바지랑대에 줄을 의지하고 부모의 일복을 말리던, 지금은 널 빨래마저도 없는 스산한 빨랫줄이 떠오른다.
새끼손가락 크기로 썬 무는 하룻밤 별빛에 몸피가 제법 줄었다. 하룻낮 볕과 갈바람 만 쐬어도 꼬들꼬들 단내 나는 무말랭이가 될 것이다. 얼마 전까지도 어머니 손맛이 밴 무말랭이무침을 먹었다. 어릴 적부터 그 무말랭이에 맛 들인 딸도 가끔 그 맛을 들먹인다. 고향집 아랫목을 지키던 어머니가 요양원에 들어가시자 친숙한 무말랭이무침을 먹을 수 없게 됐다. 사 먹는 무말랭이는 어머니 손맛을 대신하지 못한다. 아껴먹던 어머니 무말랭이가 바닥났을 때, 다시는 그 맛을 볼 수 없다는 상실감이 덮쳤다.
이 맛만은 살려보고 싶었다. 살려야 했다. 맛의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서둘렀다. 손에 물집이 생기도록 무를 썰었다. 볕에 무 썰어 말리기를 몇 번째. 장딴지 굵기의 무 한 개에서 나오는 말랭이는 고작 한 줌이다. 무말랭이가 이렇게 탄생하는구나 하고 어머니 정성을 생각하게 된다.
농익은 해는 농부 얼굴에 미소를 피운다. 퇴직한 농사꾼인 오빠는 수확기에 든 고추 농사를 냉해로 망쳤다. 허탈함에 농기구 내려놓고 산중에서 색소폰만 불더니, 들깨 수확으로 웃음을 찾았다. 예닐곱 말을 일곱 말이라고 반올림해서 자랑했다고 실토한다.
무말랭이를 거둬들이고, 곶감용 둥시감을 샀다. 둥시감은 씨가 아예 없거나 한 개쯤 실수인 듯 들어있는 감이다. 택배로 도착한 감 상자를 여니 떫은 내가 훅 끼친다. 풋거름 내도 설핏 풍긴다. 감 상자에서 맡는 고향 냄새다. 소가 뿔을 비벼댄 통에 둥치가 성할 날 없던 감나무가, 허름한 아래채 슬레이트 지붕에 가지를 기대고 빈집을 지키는 그 대감나무가 냄새에 묻어 나온다.
껍질 벗긴 곶감용은 곶감걸이에 걸어서, 납작 쓴 말랭이용 감은 건조 망에서 말린다. 전기건조기도 요즘 햇살보다 성능이 떨어진다. 포슬포슬한 빛 입자가 보일 듯 볕살이 따스하다. 이런 볕에 감은 곶감으로 무는 말랭이로 변신할 것이다.
시월 상달은 느슨했던 살림을 하게 하는 달이다. 시골장에서 무청이 펄펄한 무 열몇 개를 만 원에 샀다. 풀머리 같은 무청을 잘라 바람이 잘 드는 베란다 줄에 걸친다. 시간을 더디 가게 잡는 심정이랄까. 덕분에 겨울 양식이 덤으로 생기는 셈이다.
전통한옥마을 탐방수필집을 출간하고 번아웃 유사 증세에 빠졌다. 출간한 책이 지긋지긋하게 정나미 떨어진 사람 같다. 연소 증후군이며 탈진 증후군이라던가. 그 무력감에서 헤어나오게 불러낸 고마운 햇살이다. 누군가 무심히 한 말에 생기 한 가닥 붙든 격이랄지. 빛 세례에 무를 말리고 감을 말리고, 눅은 마음도 말린다. 볕살에 한바탕 샤워한 후면 심신에 기운이 고물대는 느낌이다. 지난여름에 무지막지 땀 쏟게 한 그 해가 맞나 싶다.
겨울 들머리에는 계절만 갈무리하는 게 아니다. 겨우내 먹을거리를 준비하고, 흘려보낸 시간도 차분히 되읊는다. 절벽 같은 끝 달을 마주하고 당혹감에 젖을 때, 내리막길에 든 하루해마저 짧고 강렬하다. 이즈음 소회는 쓸쓸하다기보다는 썰썰함에 가깝다. 먹어도 시장기가 가시지 않는 허기감이 덮치는 걸 보면 그렇다.
다행히 무말랭이 맛이 희미하게나마 궤도를 찾았다. 맛 깊이야 어찌 어머니 손맛에 미치랴. 미진하나마 애들에게 엄마 손맛으로 기억되면 좋으련만. 여분의 무말랭이를 포장해서 저장용으로 보관한다.
해넘이께 같은 이즈음 햇살은 유독 아깝다. 간당간당하게 남은 올해 시간 같다. 옥상에 서면 어김없이 고향 마당에서 하늘을 우러르는 기분이다. 빈 빨랫줄만 봐도 유년 속 풍경이 단숨에 달려나온다. 비바람에 몸통이 다 삭은 바지랑대에 줄을 의지하고 부모의 일복을 말리던, 지금은 널 빨래마저도 없는 스산한 빨랫줄이 떠오른다.
새끼손가락 크기로 썬 무는 하룻밤 별빛에 몸피가 제법 줄었다. 하룻낮 볕과 갈바람 만 쐬어도 꼬들꼬들 단내 나는 무말랭이가 될 것이다. 얼마 전까지도 어머니 손맛이 밴 무말랭이무침을 먹었다. 어릴 적부터 그 무말랭이에 맛 들인 딸도 가끔 그 맛을 들먹인다. 고향집 아랫목을 지키던 어머니가 요양원에 들어가시자 친숙한 무말랭이무침을 먹을 수 없게 됐다. 사 먹는 무말랭이는 어머니 손맛을 대신하지 못한다. 아껴먹던 어머니 무말랭이가 바닥났을 때, 다시는 그 맛을 볼 수 없다는 상실감이 덮쳤다.
이 맛만은 살려보고 싶었다. 살려야 했다. 맛의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서둘렀다. 손에 물집이 생기도록 무를 썰었다. 볕에 무 썰어 말리기를 몇 번째. 장딴지 굵기의 무 한 개에서 나오는 말랭이는 고작 한 줌이다. 무말랭이가 이렇게 탄생하는구나 하고 어머니 정성을 생각하게 된다.
농익은 해는 농부 얼굴에 미소를 피운다. 퇴직한 농사꾼인 오빠는 수확기에 든 고추 농사를 냉해로 망쳤다. 허탈함에 농기구 내려놓고 산중에서 색소폰만 불더니, 들깨 수확으로 웃음을 찾았다. 예닐곱 말을 일곱 말이라고 반올림해서 자랑했다고 실토한다.
무말랭이를 거둬들이고, 곶감용 둥시감을 샀다. 둥시감은 씨가 아예 없거나 한 개쯤 실수인 듯 들어있는 감이다. 택배로 도착한 감 상자를 여니 떫은 내가 훅 끼친다. 풋거름 내도 설핏 풍긴다. 감 상자에서 맡는 고향 냄새다. 소가 뿔을 비벼댄 통에 둥치가 성할 날 없던 감나무가, 허름한 아래채 슬레이트 지붕에 가지를 기대고 빈집을 지키는 그 대감나무가 냄새에 묻어 나온다.
껍질 벗긴 곶감용은 곶감걸이에 걸어서, 납작 쓴 말랭이용 감은 건조 망에서 말린다. 전기건조기도 요즘 햇살보다 성능이 떨어진다. 포슬포슬한 빛 입자가 보일 듯 볕살이 따스하다. 이런 볕에 감은 곶감으로 무는 말랭이로 변신할 것이다.
시월 상달은 느슨했던 살림을 하게 하는 달이다. 시골장에서 무청이 펄펄한 무 열몇 개를 만 원에 샀다. 풀머리 같은 무청을 잘라 바람이 잘 드는 베란다 줄에 걸친다. 시간을 더디 가게 잡는 심정이랄까. 덕분에 겨울 양식이 덤으로 생기는 셈이다.
전통한옥마을 탐방수필집을 출간하고 번아웃 유사 증세에 빠졌다. 출간한 책이 지긋지긋하게 정나미 떨어진 사람 같다. 연소 증후군이며 탈진 증후군이라던가. 그 무력감에서 헤어나오게 불러낸 고마운 햇살이다. 누군가 무심히 한 말에 생기 한 가닥 붙든 격이랄지. 빛 세례에 무를 말리고 감을 말리고, 눅은 마음도 말린다. 볕살에 한바탕 샤워한 후면 심신에 기운이 고물대는 느낌이다. 지난여름에 무지막지 땀 쏟게 한 그 해가 맞나 싶다.
겨울 들머리에는 계절만 갈무리하는 게 아니다. 겨우내 먹을거리를 준비하고, 흘려보낸 시간도 차분히 되읊는다. 절벽 같은 끝 달을 마주하고 당혹감에 젖을 때, 내리막길에 든 하루해마저 짧고 강렬하다. 이즈음 소회는 쓸쓸하다기보다는 썰썰함에 가깝다. 먹어도 시장기가 가시지 않는 허기감이 덮치는 걸 보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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