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4.13
복숭아꽃을 보러 가다...
벚꽃이나 매화꽃을 보러 간다는 말보다 복숭아꽃이나 배꽃을 본다는
말이 훨씬 운치가 있게 들린다.
문학기행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어느 봄날 길을 나섰다.
부산에는 벚꽃이 진 후 잎이 푸릇푸릇 돋을 즈음인데
경북 영덕을 지나 특산품인 고추로 잘 알려진 영양으로 가는 길엔
그제야 봄이 꽃망울로 몽글몽글 피고 있었다.
금강산도식후경이란 말이 딱 어울리는 밥상이다.
영양에서 나는 산나물이 그득 올려진 밥상마다 이렇게 깨끗이...
조지훈 문학관에서 반가운 세 분을 만났다.
바로 청록파시인들, 하나같이 늠름하다.
든든했을 동지이자 벗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승무(僧舞)
조지훈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빰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合掌)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조지훈의 '승무'
그 승무의 습작과정이다.
그는 열아홉살때에 수원 용주사에서 '참 승무'를 보게 된다.
그날 그의 정신은 승무 속에 용입되고 만다.
그는 祭가 파한 다음에도 밤늦게까지 절 뒷마당 감나무 아래서 넋없이 서 있었다고 한다.
詩情을 느낄 때 뜻모를 선율이 먼저 심금에 부딪침을 깨닫는다는 그는
집에 돌아와서도 이듬해 늦은 봄까지 붓을 들지 못하고 지내게 된다.
그렇게 승무에 대해 한마디의 언어, 한 줄의 구상도 찾지 못한 채 막연한
괴로움에 싸여 있던 그가 비로소 승무를 종이위에 올리게 된 것은
미술 전람회에서 만난 김은호의 '승무' 로 인해서이다.
그 난산의 시를 잉태하기까지 그는 세 가지의 승무를 사랑했다고 한다.
한성준의 춤, 최승희의 춤, 어떤 승려의 춤...
역시 퇴고시 가장 괴로웠던 것은 장삼의 미묘한 움직임이었다고 한다.
어떻든 구상한 지 열 한 달, 집필한 지 일곱 달만에 그의 승무는 완성이 된다.
자연한 해조諧調를 이루는 빈틈없는 부연은 생략보다도 어렵다는 것을
그는 승무를 완성해가며 절실히 느꼈다고 한다.
그의 글을 읽으며 과연 명작이란 쉬 탄생하는 게 아니라는
한 본보기가 되었다.
그는 물론 승무에 대해 완벽하다거나 만족해하지 않았다. 작품에 있어서
영원한 완성품은 없는 듯 싶다.
↓문학기행이라는 타이틀로 동래정씨의 한 정자에 모였다.
시낭송이야 으레 있는 일이지만 정씨가문의 내방가사의
낭송을 들으며, 또 멋진 무반주 노래에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하필이면 억수로 추웠던 날, 정자바닥에서 오들오들 떨며 추위를 달래고자
마신 포도주,
연거푸 마신 포도주의 기운으로 돌아오는 길은 그저 몽롱했으니.
문학기행인지 복숭아꽃보러 간 것인지
그저 봄날 하루는 저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