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題半楓錄 / 이용휴

by 서정의 공간 2015. 5. 18.

 

 

 

 

* 안대회 지음 『고전 산문 산책』 (휴머니스트, 2011년), 50-52쪽.

  

 

 

 

題半楓錄

 

 

옛날 어떤 사람이 꿈에 미인을 보았다.

너무도 고운 여인이었으나 얼굴을 반쪽만 드러냈기 때문에 그 전체를 볼 수 없었다.

반쪽에 대한 그리움이 쌓여 병이 되었다.

누군가가 그에게, “보지 못한 반쪽은 이미 본 반쪽과 똑같다”고 일깨워주었다.

그 사람은 바로 답답증이 풀렸다.

무릇 산수(山水)를 구경한다는 것은 모두 이렇다.

그뿐 아니다.

금강산은, 산봉우리는 비로봉이 으뜸이고, 물길은 만폭동이 최고다.

이제 그 둘을 모두 구경하였으므로 반쪽만 봤다고 말하기 어렵다.

이것은 음악을 듣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구소곡(九韶曲)을 들은 자라면, 그것으로 그치고 다른 음악은 더 이상 듣지 않을 것이다.

 

 

*구소곡(九韶曲) : 중국 상고 시절 순(舜)임금 때 지어진 음악으로, 최상의 음악이라고 치켜세워진다.

 

 

 

 

 *금강산여행기를 평한 짧은 글이다. 지인 하나가 금강산을 구경하고 나서 지은 작품집을 그에게 보여주었다. 그는 금강산 전체가 아니라 그 반쯤만 보고 왔다. 그래서 작품집 이름을 <풍악산 반쪽의 기록半楓錄>이라고 했다. 이 작품집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이용휴는 대뜸 미인이야기를 꺼냈다. 미인의 반쪽 얼굴만을 보고서 나머지 반쪽에 대한 그리움으로 병이 들었다는 사람의 이야기다. 비유가 촌철살인의 힘으로 다가온다.

 

 작품집이나 문집을 평가할 때, 직접적으로 작품이나 작가의 세계를 꼬치꼬치 따지지 않는 방법이 있다. 전혀 엉뚱한 사연이나 각도에서 작품과 작가를 바라보고 논하는 방법이다. 그런 은유와 상징의 방법이 18세기에 제법 즐겨쓰였다. 미인의 비유도 그런 글쓰기의 하나다.

 

 미인의 사연은, 아름다운 금강산을 다 보지 못한 아쉬움과 그리움을 함축적으로 표현하였다. 그러나 산수뿐이랴. 실은 우리의 인생도, 예술도, 사회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이용휴의 소품문은 이렇게 짧은 비유를 통해 인생의 깊은 의미를 음미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