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달로스는 뛰어난 조각가였다. 나무에 생명을 불어넣고, 돌까지도 일어서 걷게 할 정도였다.
또 그는 훌륭한 건축가이기도 해서, 그 유명한 미노아의 미궁을 설계하기도 했다. 그 미궁 속에는
미노타우로스라는 괴물이 살고 있었다. 그 속에 들어간 사람 가운데 무사히 살아나온 사람은 하나도
없었지만, 그리스의 영웅 테세우스는 괴물을 해치우고 밖으로 빠져나오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어떻게? '아리아드네의 실'을 따라서다. 이제 우리는 예술의 비밀을 찾아 미학사의 복잡한 미궁 속으로
들어가려 한다. 어떻게 하면 길을 잃지 않고 빠져나올 수 있을까. 테세우스처럼 붉은 실을 따라가면 된다.
그 붉은 실은 무얼까. 바로 '가상'과 '진리'라는 개념이다.
가상과 진리라는 개념을 둘러싸고 대략 두 가지 노선이 있었다. 플라톤은 예술이 가상을 포기해야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이 가상을 통해서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 두 가지 상반되는 관점은 그 뒤에도 여러 가지로 변형되고 뒤섞이면서, 미학사 속에서 자꾸 되풀이된다.
그러므로 이 두 관점만 따라간다면, 우리는 수천 갈래의 길이 어지럽게 얽힌 미궁에서 예술의
비밀이 숨어 있는 중심에 도달했다가 무사히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을 거다. 절대로 실을 놓치지 말도록.
다이달로스는 밀랍으로 아들과 자기 몫의 날개를 만들어 바다 위를 마음대로 날아다녔다 한다. 옛날엔 이런
일이 얼마든지 가능했다. 예술은 마술이었으며, 예술가는 마술사였으니까. 하지만 일단 예술이 가상이
되는 순간, 예술가는 이 마법의 힘을 잃어버리게 된다. 아마 다이달로스는 예술가가 마술사였던 시절의
마지막 인물이었을 게다. 그의 아들 이카루스는 태양에 너무 가까이 가가갔다가 그 뜨거운 열에 날개가
녹아, 바다에 추락하고 말았다니.
이제 만들어 붙인 날개로 날아다니던 시절은 끝났다. 이제 마법은 통하지 않는다. 이카루스가 추락하면서
마술사의 시대도 종말을 고한다.
진중권 《미학오디세이》, 57~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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