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문화>













2020.11/12호
기차가 원동 지나는 길
글, 사진 김나현
컴퓨터 바탕화면에 낙동강과 양산 원동 매화마을 사이를 달리는 기차 사진을 깔아놓았다. 컴퓨터를 켤 때 강변을 달리는 기차를 볼 때마다 가슴이 쿵쾅댄다.
매화 철이 되면 순매원 언덕은 온통 매화꽃 천지다. 매향이 도로변에까지 자욱하다. 이때는 분홍색 꽃 너머로 푸른색 KTX가 달려오면 어울리겠지만, 꽃도 단풍도 없는 푸른 계절에는 창틀과 기관사실이 볼그레한 무궁화호 기차가 어울린다. 하여 언덕 위 전망대에서 빨간색 기차가 오기를 기다릴 때, 낙동강 물결을 가르고 수상 오토바이가 제트비행기처럼 내달리는 광경은 덤으로 누린다.
요산 김정한의 소설 <수라도>가 탄생한 원동이나 영화 <밀양>으로 친근해진 밀양에 갈 일이 있으면 구포역에서 무궁화호 기차를 탄다. 구포역에서 원동역까지 자전거 길을 따라 걸어갈 수도 있다. 강바람과 자연이 안기는 상쾌한 기운으로 심신도 더할 나위 없이 가벼울 것이다. 어느 날엔가는 워킹화 끈을 조여매고 이 길을 걸어 볼 생각이다.
우체국과 기차역이 가까이에 있다는 건 실생활에서 누리는 크나큰 혜택이다. 구포역을 출발한 경부선 기차는 부산을 벗어나자마자 시원스레 열리는 강을 만난다. 기차도 이런 경치에 숨통을 트며 신나게 내달린다. 그러기에 이 구간만큼은 새마을호도 아니고 KTX도 아닌 느리게 가는 무궁화호 기차를 타고 지나 보기를. 어느새 나타난 바깥 풍경에 눈빛을 반짝이며, 싱그러운 대지와 낙동강이 흐르는 운치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됨을 알게 될 것이므로.
구포역에서 원동까지 가는 데는 십 분여, 밀양역까지는 삼십 분쯤 걸린다. 이 구간은 기차가 낙동강에 바짝 붙어서 달리는 길이다. 창문 아래로 보이는 강변길에는 자전거 라이더가 달리는 모습도 종종 보인다. 기차에 타고 있으면서도 그들이 부러울 때다. 그들은 기차에 탄 이들이 부러울지도 모를 일. 그들에게는 기차가, 기차에서는 그들이 한 풍경이 되는 구간이기도 하다.
창문을 열고 싶은 충동이 이는 이쯤에서는 카메라를 꺼내 들게 된다. 그러는 중에 기차에서는 ‘곧 우리 열차 물금역, 물금역에 도착합니다.’라고, 우리 열차임을 강조하는 기관사의 안내방송이 흘러나온다. 들을 때마다 남자 기관사의 친근한 안내방송이 기차여행 하는 중임을 상기시킨다. 그럴 때면 기차를 타고 있음에 도취하여 낭만 물씬한 정취를 즐긴다. 물금역을 시작으로, 삼랑진역, 밀양역에 정차해 일부 승객이 내리고 새 승객을 태우고는 서울로 가는 먼 여정에 든다. 느리게 가는 기차는 가는 길목마다 걸음 멈추고 숨을 고를 것이다.
상행선 경부선 KTX를 타면 정신 바짝 차리고 있어야 한다. 눈 깜짝할 새에 삼랑진역까지 이어지는 아름다운 풍광을 자칫 놓칠 수 있기에. 대형 풍경화 화폭 같은 이 경치를 보려고 상행 때는 왼쪽 좌석을, 하행 때는 오른쪽 좌석을 예매하곤 했다. 고속열차가 정차 없이 원동 매화마을 앞을 내달릴 때는 매화꽃도 순식간에 지나치고 만다.
이 글을 쓰면서 원동역 부역장과 통화하며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나란히 뻗은 두 철길을 서울(상행선) 쪽을 향해 봤을 때 왼쪽이 상행선, 오른쪽이 하행선이라는 사실을. 그러니까 원동 매화마을에서 내려다볼 때는 강 쪽(왼쪽) 선로가 상행선이고, 안쪽(오른쪽) 선로는 하행선이라는 거다. 그래서 서울로 가는 기차에서는 왼쪽에 앉아야 강이 보이고, 부산으로 내려올 때는 오른쪽에 앉아야 강이 보인다는 뜻이다.
시골 냄새가 풍기는 원동 가는 길에서는 지방도 1022번 길도 빼놓을 수 없다. 양산 교동에서 창녕 남지를 잇는 시골길인 1022번 길. 산자락을 따라 난 고불고불한 길은 길가 표지판을 눈여겨보게 하는 길이다. 왕복 2차선 길 양쪽으로 선 벚나무 가로수와 작은 개울 너머로 보이는 소담한 마을, 굽이굽이 산허리를 돌아가는 길은 고향 가는 길처럼 아늑하고 푸근하다. 이 길에 소설 <수라도>에 미륵당으로 등장하는 절, 강에서 가장 가까운 절 ‘용화사’가 있다.
어떤 이가 내가 국제신문에 쓴 칼럼 <지방도 1022번 길>을 보고 편지를 보내왔다. 그 길을 따라 삼랑진에서 수산읍을 지나고 다시 낙동강을 한참 지나면, 북쪽으로 우포늪이 있는 창녕에 다다른다고. 젊은 시절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 어쩌다 집에 올 때면 창가에 기대어 바라보던 낙동강이, 내 글을 통해 세월 속에 묻힌 기억을 되살아나게 한다고.
이병률 산문집 <혼자가 혼자에게>를 읽던 중 종점 여행이란 말을 접했다. 용어도 신선했지만 종점여행에 대한 생각도 공감을 자아냈다. ‘괜한 것의 무게로 욱신거려서 마음마저 허기질 때는 종점까지 향하는 버스를 탄다. 어딘가를 가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냥 버스의 마지막 종착지까지 가서, 얼마간 있다가 다시 같은 방법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라고.
양산 원동을 나만의 종점 여행지로 정해보는 건 어떨까. 종점까지 못 가면 어떠리. 가다가 돌아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여행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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