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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신문 칼럼

[감성터치] 옛것과 함께 살아가기

by 서정의 공간 2021. 5. 3.

[감성터치] 옛것과 함께 살아가기 /김나현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1-05-02 18:55:57
  • | 본지 22면

 

 

세월을 머금은 고택은 대체로 고풍스럽다. 한옥이나 향교 서원이 그렇다. 거기엔 오랫동안 누적된 수수한 품위가 깃들었다. 이런 집과 사람 사이에 중력이 작용하듯 끌리는 면이 있다. 비단 옛사람만이 갖는 묵은 감성은 아닐 터다.

한 수필지에 ‘옛것과 함께 살아가기’라는 타이틀로 글을 쓰고 있다. 그 옛것이라는 게 주로 전통 한옥마을과 고택 건물이 대상이다. 관련한 전문지식이 별반 없는 고로 바라보는 관점을 느낀 대로 말하는 식이다. 이를테면 경주 양동마을과 운곡서원, 영주 무섬마을과 부석사, 고령 개실마을과 대가야고분군, 영양 연당마을, 구례 오미마을과 운조루, 밀양 다원마을과 밀양향교 등이다. 이들 서원 절 고분 고택 향교도 대부분 옛것이다. 멀게는 고대에서부터 가까이는 조선시대에 이르는 역사를 간직했다. 다 그만의 역사와 내력이 은밀히 스몄다. 그들에서 풍기는 근엄하고 온화한 분위기도 비슷하다.

이 중 양반가 저택이거나 살만한 부잣집이거나 일반 한옥은 공통점이 있다. 아담한 마당을 두고 집채가 앉은 품은 틀림없이 한민족의 정서를 드러낸다. 대문 가까이에 사랑채를 두었다. 장독간과 고방을 두었으며 우물도 있다. 독립채로 사당도 두었다. 사랑채와 안채 사이에는 중문을 두거나 담장으로 구분 지었다. 이처럼 한옥은 가장 한국다운 집이라는 점이다. 아쉽게도, 방문했던 한옥마을에서 실망한 부분이 있다. 바로 담장이다. 대부분 담장을 보수해서 옛날 흙돌담이 주는 푸근한 정서가 확연히 줄었다. 보전과 보수사이 의견차이도 왕왕 있었을 것이다. 실제 거주하는 입장과 지키자는 입장이 다를 것이다. 어쨌거나 한민족 고유의 정서를 장차 자료에서나 접하게 될 거라는 우려도 생긴다.

옛것을 접하며 그들을 보는 까막눈도 좀 틔었다. 향교는 고려·조선시대에 지방에서 유학을 교육했던 관학 교육기관이고, 서원은 학문연구와 선현제향을 위한 사설 교육기관이다. 이 두 곳에는 반드시 사당이 존재했다. 강학 공간과 배향 공간을 두고 각각 대유학자와 선현을 제사 지낸다. 이런 기본 상식이 없이도 선인의 맑은 정신을 느낄 수 있는 곳이 향교와 서당이 아닌가 한다. 휴대폰도 꺼두고 고요히 산책해볼 만한, 아이들과 갈 곳으로 체험장이나 놀이공원 못지않게 추천하고 싶은 장소다.

요즘, 동네 골목을 걷는 즐거움이 부쩍 줄었다. 이사 오던 십여 해 전만 해도 골목엔 주택이 즐비했다. 정원마다 계절을 알리는 꽃이 피고 새소리가 경쾌했다. 요즘 같은 만화방창 시기엔 덩굴장미가 담장을 친친 감고 색색이 피었다. 저녁 산책길로 달리 갈 곳 없이 골목길을 택했던 이유였다. 이런 주택이 최근 이삼년 새 가뭇없이 사라지는 중이다. 집이 사라진 터엔 어김없이 오륙 층짜리 건물이 들어선다.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는 정원 딸린 집을 보면 조마조마하다. 작금의 세태로 볼 때 집이 언제 허물어질지, 사각 건물이 들어설지 모를 일이다.

며칠 전, 한국전쟁 때 세운 특별한 교회가 있다고 해서 찾아갔다. 주변 공사로 곧 헐린다는 소식도 함께여서 서둘렀다. 서구 아미동 까치고개에 위치한 은천교회다. 피란민이 천막과 판자로 처음 교회를 세웠다. 후에 화강암 석조 건물로 거듭났다. 인근에 짓는 행복주택과 진입도로 공사가 교회 가까이 진행된 상태다. 스테인드글라스 창문과 아치형 출입문도 아담하고 고풍스럽다.

이 교회는 전쟁이 한창이던 때 몰려든 피란민의 기초 삶을 보살폈다. 주일학교를 열어 어린이들 꿈도 지원했다. 전쟁 속에서 주민과 상생한 역사의 현장이 사라진다며 그곳 관계자는 애석해했다. 머릿속으로 ‘초량이바구길’ 출발지점에 있는 옛 백제병원, 같은 길에 있는 벽만 남은 남선창고 터의 적벽돌이 떠올랐다. 이 교회도 보전하면 장차 역사가 될 것이다. 시작되는 처음부터 역사가 되는 건 없을 터이므로. 유럽풍으로 고풍스럽던 교회 성전 너덜너덜한 성경책들이 눈에 아른거린다. 옛것이 사라지면 거기에 담긴 동시대의 내력도 사라질 것이다.

수필가·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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