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짙어가는 저녁, 한반도 최남단 땅끝지점을 지나 땅끝 전망대에 이르니
많은 사람들이 서성이고 있다. 일몰을 보기 위해서라기에 일몰 시간을 물어보니
아직 20여분이 남아있다. 그 시간을 절약하려고 해안길을 따라 쭉 가다가
산꼭대기의 모양이 뾰족한 망산을 만난다. 노을이 서서히 지는 바다를 끼고 이어지는
고갯길을 달리다 보니 한 무리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일몰을 보기 위함이리.
땅끝 전망대에서 보다 일몰을 보기에 적합해보여 우리도 그 무리속에 어울린다.
서쪽 하늘을 온통 붉게 물들이며 태양이 저 너머로 사라지려 하고 있다.
산 위에서 태양은, 침을 삼키 듯 꼴깍, 하는 순간에 산 너머로 떨어져내리는데
바다에서는 어떨려나. 모르는 사람들끼리 어울려 그 순간을 지켜보고 있다.
그 뒷모습을 지켜보자니 그또한 아름다운 한 풍경이다. 뒤에서 찰칵,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차차 바다로 떨어지던 해는 점차 몸을 바다속으로 빠트리더니
종내는 그 붉은 한 점까지도 감춰버린다.
그 자리에서 밤을 새면 그날 빠졌던 그 해가 그대로 떠오르겠지 하고는
길가에 자리를 펴고 저녁상을 차린다.
지나가던 트럭창으로 한 여자가 소리친다..'맛있겠다~~~'
망산을 바라보며
일몰 뒤에 붉게 남은 태양의 여운을 감상하며
라면을 끓여 검소한 저녁을 먹던 시간은 오래오래 기억에 남으리
이미 어두워진 보길도.
그 섬을 한 바퀴 둘러친 길을 따라 나오며 숙소를 구하다
넓은 창이 많은 한 민박집을 만장일치로 정하고 들어간다.
얼굴이 구릿빛으로 그을린 나이 초로이전인 주인아저씨가 멀리서 온 객을 반긴다.
일박에 오만원이란다. 간절한 눈빛으로 만원을 깎았더니 아주머니한테 가서 하는 수 없이
깎아 줬다며 보고를 한다.
민박집 마당 앞 도로 지나 호수가 있기 때문인가 평상에 앉아 있자니 모기가 잠시도
가만 두질 않는다. 파도 소리가 쏴쏴 들려오는 민박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해수욕장이 있다고 하니 옷을 편하게 갈아입고 저녁 산책길에 나섰다. 한적한 해수욕장이 곧 모습을 드러내는데 인파로 넘쳐나는 유명 해수욕장과는 거리가 멀다. 해변 가 잔디밭엔 텐트를 친 피서객들이 몇 팀 있긴 하다.
돌아와 잠을 청하는데
달이 하도 창을 두드려대는 바람에 잠을 잘 수가 있어야지. 뒤척이다 끝내 일어나 마당에
나갔더니 보려던 달은 없고 북두칠성만 나를 지키고 있다.
휘영청 밝은 가로등이 서럽도록 붉게붉게 마당으로 쏟아져내리고 먼데서
들려오는 쏴쏴~~
파도소리는 잠못드는 가슴을 쓸어내리고.
그 밤 그 자리에 누군가가 있었더라면 그냥 한마디 말이 없이도
그 밤을 침묵속에 새울 수가 있겠던데.
기어이 밤을 뜬 눈으로 새운 그 밤이 못내 다시 그리워서인가
다시 쓸쓸해지려는 이 마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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