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도시>2015.1월호 통권 142호
문장文章을 따라 눈[雪]의 고장에 가다
생소한 말투와 언어, 지금껏 느껴보지 않은 체감의 공기, 이색적인 풍경…… 우리는 이런 낯선 장소를 밟으며 다른 모습의 삶을 체험하고 더 넓은 세계를 품게 된다. 미지의 세계에 가 보았다는 성취감도 클뿐더러 정신세계도 풍요로워진다. 이는 여행이 주는 끊을 수 없는 보약이다. 여행이야말로 진정한 체험의 장이며 행복수치를 올리는 데 일조하지 않나 싶다. 행복감 지수가 높은 사람일수록 여행 빈도가 높다고 한다. 벼른 여행일수록, 갈망했던 곳일수록 얻는 만족도는 높을 터. 나도 소설 속 문장을 따라 오래 맘에 두었던 눈의 고장에 다녀왔다. 그 눈길 속으로 행복해지고 싶은 당신과 함께 떠나본다.
소설 첫 문장은 절묘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문학의 힘은 실로 대단하다. 첫 문장이 이만큼 설레게 하고, 여행을 부추기는 글이 있을까. 그 문장으로 하여 오랫동안 눈의 고장으로의 여행을 꿈꾸었다. 기차가 두 고장을 잇는 터널을 빠져나올 때 딴 세상처럼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을 압축한 문장. 주인공의 눈을 따라 고도산맥을 지나는 터널을 벗어날 때, 나도 그 시점 같은 공간에 있어보고 싶었다. 환하게 펼쳐지는 순백의 세상이 어떤가를 두 눈으로 보기를 꿈꾸었다.
터널, 철도 관사, 역장, 밤의 눈, 기차간 풍경, 눈옷, 장화, 온천장, 게이샤……. 이런 단어가 나열되는 소설의 무대를 찾아, 눈에 보이는 거라곤 온통 눈뿐인 차갑게 가라앉은 적요한 마을에 왔다. 도쿄에서 니카타행 죠에츠신칸센을 타고 소설가가 머물렀던 온천으로 향할 때, 기차 안 전광판에 상모고원을 통과하는 중이라는 안내글이 흘러나왔다. 산맥을 통과하느라 몇 개의 터널을 지나는지 셀 수 없다. 고도가 높아서인지 귀가 자주 먹먹해졌다.
《설국》의 고장 유자와는 높은 산맥에 둘러싸였다. 눅눅한 바닷바람이 산맥에 부딪혀 초겨울부터 이른 봄까지 눈을 쏟아 붓는데, 터널 전과 후의 지역 기후가 이렇듯 다른 연유는 높은 산맥 때문이었다. 첩첩이 겹쳐진 우람한 산이 이른 봄 햇살에 새하얗게 반짝인다. 기차가 이전 역을 출발했을 때만 해도 차창밖엔 벚꽃이 한창 만개하고, 들판에는 보리가 새파랗게 자라거나 때 이른 아지랑이가 보일 듯 봄빛이 완연했다. 그런데 고장이 바뀌는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소설 첫 문장에서처럼 하얀 겨울 세상이 열린다. 이 고장의 특이한 풍취가 소설 첫 문장으로 탄생했음을 알겠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를 모신 마을
에치코유자와역을 나서니 척설이 도로변에 퇴적층처럼 쌓였다. 곳곳에 꽃힌 빨간 눈금이 표시된 2m 높이의 막대기를 보며 눈의 고장에 있음이 실감난다. 터널 저쪽 봄이 오는 풍경과는 전혀 딴판이다. 산맥으로 둘러싸인 눈의 성에 들어온 듯 시야가 환하다. 햇볕은 따스한데 얼굴에 닿는 공기는 얼음처럼 차갑다. 마을 뒷산에는 스키어가 탄 리프트가 쉼 없이 오르내리고, 계곡에는 눈석임물이 비 온 후처럼 콸콸 흐른다.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신기한 광경이다. 여기는『설국』의 무대다. 눈처럼 해맑은 감성을 아기자기한 문체로 쓴 소설의 배경답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를 모신 마을이, 이 마을 사람이 부럽다. 얼마나 자부심이 클까 하고.
바람이 차가워질 무렵, 쌀쌀하고 찌푸린 날이 계속된다. 눈 내릴 징조
이다. 멀고 가까운 높은 산들이 하얗게 변한다. 이를 ‘산돌림’이라 한다.
또 바다가 있는 곳은 바다가 울리고, 산 깊은 곳은 산이 울린다. 먼
천둥 같다. 이를 ‘몸 울림’이라 한다. 산돌림을 보고 몸 울림을 들으면서
눈이 가까웠음을 안다.
기차가 다니지 못할 정도로 많은 눈이 내리고, 눈에 갇힌 채 긴 겨울을 보내야 하는 고장에 눈의 계절이 도래했음을 알리는 소설 속 문장이다. 작가가 외진 한촌에 불과한 유자와 온천에 머물게 된 건, 자연 풍경 묘사에 대한 작가로서의 관심 때문이었다고 전한다. 당시의 문학, 특히 소설이 자연에서 멀어지고 자연을 표현하는데 낡고 구태의연한 단어들만 떠올린다는 한계를 절감했다. 이런 고뇌에 젖은 작가와 유자와 마을의 한적한 분위기가 잘 맞아떨어졌을 것 같다.
소설의 핵심은 순간순간 덧없이 타오르는 여자의 정열에 있다. 개통한 지 얼마 안 된 시미즈터널 밖으로 나오면 눈의 고장, 설국이다. 그 한갓진 곳의 온천장에서 게이샤로 살아가는 고마코, 그녀에게서 발산되는 야성적 정열과는 대조적으로 순진무구한 청순미로 시마무라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요코. 이 두 여자를, 도쿄에서 온 무위도식하는 여행자 시마무라는 허무의 눈으로 지켜본다. 내용도 무료하여 덤덤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산책하며 주위 풍경을 감상하듯 찬찬히 읽을 때 제 맛을 내는 소설이다.
버킷리스트 하나를 지우다
나는 소설 문장 전개보다도, 상상이 되지 않는 엄청난 눈이 덮어버린 세상이 과연 어떨까가 궁금했다. 과연 집은 눈에 파묻혀 지붕만 보이고, 적설량을 표시하는 긴 작대기의 어디까지 눈이 쌓였을까 하고. 막연하게 꿈꾸어왔는데 지금 믿기지 않게도 그 설국에 서있다. 와서 보니 지붕만 빠끔 보이는 게 아니라 지붕마다 눈이 소복이 쌓여 있다. 길가 잣눈을 발로 툭 차보고 손으로 뭉쳐본다. 이런 곳은 눈 덕분에 스키마니아가 몰려들고, 문학의 큰 별을 찾는 독자와 문학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을 것이었다.
소설 속 시미즈터널의 운치를 기대한다면 작가가 타고 다녔다는 국철을 타고 가라유자와역에 내리면 된다. 그러나 타고 온 고속열차는 에치코유자와역에 닿기 전에 우람한 설산을 깜짝 선보이며 이내 역내로 진입한다. 터널 저쪽 지역과 판이한 눈[雪]세상에 눈[目]이 동그래지고 많은 눈을 기대한 마음이 실망스럽지만 그 아쉬움도 잠시. 마을 중심을 관통하는 길을 따라 다카항여관으로 가는 길에 평생 보지 못했던 규모의 눈 무더기가 눈의 고장임을 알린다. 역에서 쉬엄쉬엄 걸어 당도한 다카항여관 앞, 소설 탄생지임을 알리는 간판 앞에서 두 손을 치켜들고 쾌재를 불렀다. 그가 묵으며 몇 편의 소설을 집필한 여관 앞에서 버킷리스트 하나를 지운다.
여관은 마을이 한눈에 들어오는 언덕배기에 자리했다. “여관방에 앉아 있으면 모든 걸 잊을 수 있어 공상에도 신선한 힘이 솟는다.”라고 한 다다미방 낡은 의자에 앉아보았다. 앞쪽 전면 창밖은 산도 하얗고 마을 지붕도 하얗다. 비스듬한 언덕 저 아래쪽으로 작가가 타고 다녔다는 국철이 지나는 가라유자와역이 보이고, 역 뒤편에는 스키어들이 원색 옷차림으로 유유자적하다. 낡은 탁자와 의자, “여관주인이 특별히 꺼내 준 교토 산 옛 쇠 주전자에서 부드러운 솔바람 소리가 났다.”라고 한 그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쇠 주전자 하나, 화로, 소설 속 고마코의 실제 모델인 게이샤 마츠에이가 썼을 법한 자그맣고 낡은 경대가 놓여 있다. 그녀는 가와바타를 지극정성으로 모셨다고 전한다.
건물은 개축했지만 쓰던 방은 그대로 간수했다는 주인의 말이다. 이 방에 앉으면 누구라도 잠시 쉬어가고 싶겠다. 글 한 편 쓰는 일은 그 다음이고, 눈 앞 풍경부터 가슴에 담아야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람한 에치코산맥, 터널을 빠져나오거나 진입하는 기차, 아늑히 내려다보이는 눈 덮인 마을, 뜨거운 온천수에 몸 담그고 내다보는 운치……. 책이 출간된 1937년 당시만 해도 지금보다 훨씬 한적해 소설 속 분위기가 한층 실감났을 것 같다. 원래의 예스런 목조 건물은 불타 새로 지은 현대식 양옥이라 좀 실망한 면은 있다.
작가의 숨결이 남은 이 여관에서 하룻밤 묵지 못했지만, 온천수에 몸 담근 것으로 애석함을 달랜다. 준비가 미흡한 여행 끝에는 이렇듯 아쉬움이 따른다. 더구나 그곳이 국외일 때, 다음에 가게 된다면 그땐 놓친 것도 채울 것이라는 후회도 따르지만 소용없는 일. 다 현재에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결과다. 문학 탄생 현장에서 소설 속 한 문장이 되고, 작가가 들려주는 차분한 문학 강의를 들은 듯 여운이 감돈다. 가방을 풀어놓고 싶지만 현실의 사정은 한 나절 있었던 것으로 만족하자며 맘을 달랜다. 역 도시락 에키벤을 사 들고 기차에 오른다. 설산의 배웅을 받으며 기차는 금방 터널 속으로 들어섰다.
삿포로를 처음 만난 <우동 한 그릇>
과연 북해도는 눈의 나라였다. 가게 될 거라는 희망 같은 것도 없이 머릿속에 맴돌았던 눈의 고장 삿포로. 1월 끝자락 삿포로 치토세공항은 오래 전부터 쌓였을 법한 눈에 덮여 있다. 공항을 출발해 조잔케이온천장으로 가는 길에 하늘이 마치 준비한 듯 눈바람을 몰아친다. 하늘도 길도, 산도 거대한 한 폭의 그림 같은 눈의 천지다. 삿포로에서 이렇게 눈 세례부터 받았다.
온천마을 조잔케이에 가로등이 켜지고, 잠시 멎었던 눈이 또 퍼붓기 시작했다. 하염없이, 하염없이……. 저녁 일정은 잠시 미루고 쏟아지는 눈 속으로 뛰어들었다. 눈이, 앞뒤 재지 않고 날아드는 불나방처럼 발간 가로등을 향해 미친 듯 날아들고, 그 가로등 주변을 맴돌며 가루눈발에 휩싸인다. 눈이 생각을 정지시키고 내일을 망각하라고, 지금 자신만 보라며 펑펑 쏟아 붓는다. 머릿속도 하얀 세상처럼 백지상태다. 삿포로의 하늘이 밤이 이슥해지도록 눈을 펑펑 쏟아대는데 그 아우성에 잠 못 들고 하얗게 밤을 새웠다. 이국에서의 밤을 꼬박. 수선한 머릿속으로 일본영화 <러브레터>에서처럼 드나드는, 뚜렷한 대상도 없는 한 마디. ‘잘 지내시나요. 오늘도… 당신이 그립습니다.’
해마다 섣달 그믐날(12월 31일)이 되면 일본의 우동집들은 일 년 중
가장 바쁩니다. 삿포로에 있는 우동집 <북해정>도 이 날은 아침부터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습니다... 중략......가게 밖에는 조금 전까지 흩날리던
눈발도 그치고, ‘北海亭북해정’이라고 쓰인 천 간판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습니다.
사실 삿포로를 처음 접한 것은 위의 동화가 아니었나 싶다. 이 동화는 일본 북해도에서 출생한 동화작가 구리 료헤이의 <우동 한 그릇> 시작과 끝부분이다. 동화를 읽다보면《설국》의 첫 문장만큼이나 귀에 쏙쏙 박히는 문장이 있었는데 바로 ‘삿포로에 있는 우동집 <북해정>’이란 말이었다. 이야기의 무대는 삿포로의 명물 시계대가 바라다 보이는 작은 골목이지만 실제 그곳에 북해정이란 우동집은 없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글을 처음 접한 때부터 삿포로는 막연한 동경의 지역이 되었던 것 같다.
최근 들어 또 한 곳 가고 싶었던 곳은 오타루 운하다. 여자 주인공이, 등산하다가 죽은 첫사랑이 묻힌 설산을 향해 ‘오겡끼 데스까, 아따시와 겡끼데스’를 외치는 아릿한 장면을 낳은 일본 영화 <러브레터>를 본 이후다. 그 영화 촬영지가 삿포로에서 멀지 않은 오타루에 있다. 선박 화물하선작업을 위해 건설한 운하가 지금은 관광명소로 한몫하고 있었다. 운하 따라 수십 개의 수은등이 켜지자, 가로등 불빛이 어른거리는 운하에 비친 옛 건물 그림자는 지상의 야경보다 황홀한 그림을 연출한다. 시간의 여유가 있으면 이 운하를 따라 꼭 걸어보기를.
여행은 끝나지 않았다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문정희의 시에서처럼, 눈 속에 고립되고 싶다는 한 가닥 마음이 설핏 고개를 치민다. 설국을 떠나는 시간까지도 보드란 쌀가루 같은 눈이 공항을 뽀얗게 뒤덮고, 탑승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창밖만 바라보고들 섰다. 비행기 날개 위 눈을 치우는 제설차량을, 치워도 금방 쌓이는 눈사태에도 의연하게 눈을 치우는 사람들을 관람객처럼 구경한다. 세상이 폭풍 전의 고요처럼 먹먹하다. 눈이 잡음을 흡수하고, 잡념을 거두기 때문일 게다. 며칠을 보고도 질리지 않는 눈으로 하여 여행하는 내내 행복했다. 기억하지 못하는 덜 아문 상처까지 치유되었을 만치.
시코츠 호수에서 만난 발간 석양과 눈밭에 선 새빨간 우체통, 눈이 세상의 경계를 지우던 도야호 가는 길, 호수로 쉼 없이 녹아들던 눈……. 이런 것들이 다시 그립다. 그 그리운 것들은 덮기 위해, 또 다른 문장을 찾아 나설 때가 되었다.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당신도 나도, 행복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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