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 중에서
광장이냐, 밀실이냐:
최인훈의 <광장>은 1960년 <새벽> 10월호에 처음 발표된 이후 지금까지 총 150쇄를 훌쩍 넘긴 작가의 대표작이자 한국 현대소설의 기념비적 작품이다. 이 소설은 6.25전쟁 후 석방포로를 싣고 인도로 향하는 배에 탄 이명준이라는 한 젊은이의 회상으로 시작된다. 철학과 3학년생인 명준은 8.15해방 직후 월북한 아버지의 친구 집에서 살았다. 그 집 딸 영미와 아들 태식의 자유분방한 생활을 보아온 명준은 고고학자인 장 선생과 나눈 대화에서 남한의 자유주의 사회를 비판한다.
자유주의 사회에서 정치의 광장은 탐욕과 배신과 살인의 추악한 밤의 광장이며, 경제의 광장은 속임수와 교활이 넘치는 광장이고, 문화의 광장은 부정과 비굴이 넘치는 광장이라고 흥분한다. 한마디로 자유주의 남한 사회에는 부도덕한 개인의 자유가 허락되는 어두운 '밀실'만이 있을 뿐, 사회적 정의가 구현되는 '푸른 광장'이 없다는 거다. 그래서 훗날 명준은 남한은 "실존하지 않는 사람들의 광장아닌 광장이었다.(...)그곳에는 타락할 수 있는 자유와, 게으를 수 있는 자유가 있었다."라고 회상한다.
공적 영역이냐, 사적 영역이냐:
아렌트는 그의 저서 <인간의 조건>에서 인간이 사는 세계를 '공적 영역', '사적 영역', 그리고 '사회적 영역'으로 구분하여 설명했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공적 존재'이다. 공개적 출현장소에서 개개인들은 한편으로 발언과 행위를 통해 자기 자신이 '누구임'을 드러내면서 세계의 사물들에 대한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표현한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역으로 타인들의 의견과 비판을 듣고 자기 견해를 수정하거나 강화시킴으로써 자기 정체성을 형성하고 유지해 나감은 물론이고 세계에 대한 현실감까지 굳혀 나간다는 거다.
한마디로 인간은 '공적 영역'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을 포함한 세계에 대한 지식까지도 얻을 수 있다는 거다. 또한 공적 영역은 도덕의 원천이라고도 했다. 그에게 도덕적 계율이란 '약속을 하고 약속을 지키려는 태도', '용서를 하고 용서를 받으려는 태도'인데, 이것들은 모두 공적 영역에서의 발언과 행위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거다.
아렌트가 말하는 '사적 영역'이란 무엇일까. 그는 사적영역을 개인이 자신과 자신이 가진 사적 유대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생활과 행복에 관심을 갖는 세계라고 정의했다. 이 영역에서는 인간의 삶이 '욕구와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행해지는데 인간은 이 영역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 때문에 사적 영역은 공적 영역과 마찬가지로 필수불가결한 인간적 조건이라는 거다. 아렌트는 "자기 자신의 사적인 장소를 갖지 못하는 것은 더 이상 인간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라고 잘라 말했다.
같은 말을 최인훈은 이렇게 표현했다.
"광장은 대중의 밀실이며 밀실은 개인의 광장이다. 인간을 이 두 가지 공간 중 하나에 가두어버릴 때, 그는 살 수 없다. 그럴 때 광장에 폭동의 피가 흐르고 밀실에서 광란의 부르짖음이 새어나온다. 우리는 분수가 터지고 밝은 햇빛 아래 뭇 꽃들이 피고 영웅과 신들의 동상으로 치장된 광장에서 바다처럼 우람한 합창에 한몫 끼기를 원하며 그와 똑같은 진실로 개인의 일기장과 저녁에 벗어놓은 채 새벽에 잊고 간 애인의 장갑이 얹힌 침대에 걸터앉아서 광장을 잊어버릴 수 있는 시간을 원한다."
아렌트도, 최인훈도 온전한 인간의 삶은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을 반드시 포함한다는 거다. 비록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선의 아름다운 삶은 공적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자유로운 행위에서 가능하다고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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