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읍-서당-먹점
거리 : 7km
예상시간 : 약 2시간 30 분
난이도 : 하동읍-서당, 중/ 서당-하동읍, 하(우리가 걸은 방향은 하동읍에서 서당방향이라 난이도 中이었음.)
♠ 하동읍-서당 구간 경유지
하동읍-바람재(2.5km)-관동(2.3km)-상우(1.4km)-서당(0.8km)
대중교통을 이용해 하동읍에 와서 지리산둘레길 하동센터에 들러 바로 걸을 수 있는 구간이다. 하동읍에서 차밭길을 통해 서당마을에 이르는 구간은 아기자기하다. 하동읍의 시원한 너뱅이들과 적량들판의 모습에서 넉넉한 농촌의 삶을 오롯이 느끼며 걷게 된다. 봄이면 산속 오솔길에서는 매화향이 진동한다. 비교적 짧은 구간이라 부담 없이 산책하듯 걸으면 좋다. 서당마을에서 대축~삼화실 구간과 이어진다.
둘레길을 열 몇 코스 다녀왔지만 이번만큼 별별일이 생긴 적은 없었다. 하동터미널에 내려 터미널 근처에서
하동재첩국 정식을 8,000원에 먹었다. 하동에서 시작된다는 둘레길로 접어들어야 하는데 그 길 찾기가 쉽지 않다.
안내센터에 들러 직원에게 상세한 안내를 듣고 구간지도까지 사서 길을 나섰다.
작은 동산 하나를 숨차게 넘어 마을로 내려와보니 웬걸 하동읍에서 헤매던 바로 그 옆 마을이다.
딱 김이 새는 순간이다.
되돌아가는 거야 얼마든지 하겠는데 완전 오르막길이다. 내려오던 길에 동네아주머니가 먹고 가라던
어른 주먹 두 개 크기의 대봉까지 먹었으니 숨이 턱에 찬다. 신음소리 내며 동산 정상까지 다시 올라가 보니
산 능선으로 가라는 화살표가 큼지막하게 서 있다.
세 사람이 모두 지나쳐온 거다.
산길에 떨어져 진한 모과향을 뿜는 이것을 하나도 가져오지 못했다.
돌아오는 길이었다면 다섯개쯤은 들고왔을 거다.
문제는 숙소였다. 이 구간 끝인 서당마을에 다 왔는데 날은 이미 저물고
대축에 있는 민박집에 전화하니 서당에서 숙소까지 너댓시간은 걸릴 거라 한다.
저녁밥과 아침밥까지 그 집에서 해결하기로 되어있는데다 산골에 식당이 있을 리 없다.
다시 하동센터에 전화했다. 토요일 날이 저물었는데도 다행히 전화를 받는다.
사정을 얘기하니 그러면 사당마을에서 하룻밤 자라는데 그곳이 마을회관이라며
전화번호를 알려준다.
마을회관에서 자다가 벌레 물린 적이 있는 친구가 질색한다. 그러나 달리 길이 없어
일러준 사당마을 이장에게 전화를 했다. 다행이 묵을 수는 있겠는데 밥이 없단다.
몇 시간을 걸었는데 다들 얼굴이 노래진다. 그때 이장이 묻는다.
거기가 어디냐고. 상우마을이라 했더니 그럼 됐다고 지금 바로 오면 저녁을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알고보니 상우마을과 사당마을은 원래 한 마을이었고, 다리 하나 건너 보이는 마을이 바로 사당마을이었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 우리는 걸음을 재촉했다. 밥이 기다린다니 더욱 기대하며.
한데 저만치 앞에 낯익은 나무 한그루가 보인다. 분명히 전생에 와봤던 마을이다.
친구와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두어 해 전에 친구와 묵었던, 벌레물렸다던 그 마을회관이다.
어쨌든 서둘러 마을회관으로 들어가니 마을 어른들이 북적댄다. 상을 차리고, 동네 노인들도 한 상
둘러앉아 밥을 먹을 참이다. 우리는 손님이라고 한 상 따로 차려준다. 파무침, 부추김치, 파래무침, 무김치며
달걀말이에 호박전까지...
밥이 꼬두밥이었지만 한 그릇씩을 다 먹었다.
이장님이 묻는다. 갤러리 와서 한잔들 할랍니꺼.
두말 할 것도 없다. "예"
동동주에 어묵탕에 돼지살볶음까지 먹고 일어섰다.
둘레길 탐방객이 많은지 이층을 새로 올렸다. 이층으로 올라가 보일러를 켰는데 몇 시간이 지나도
방이 미지근하다가 멈췄다. 추워 눈을 뜨니 02시 30분... 실례고 뭐고 이러다간 새벽에 동태가 되겠다며
다들 깨우고는 서로 이장에게 전화하라고 미룬다. 결국 내가 총대를 멘다.
이런 시간에 전화하는 건 평생 처음일 거다. 두 번째 전화에 드디어 전화를 받는 이장님.
목소리가 바닥에 깔려 "예"한다.
"이장님이지예? 여기 방이 추워서 파카입고 목도리 두르고 앉아있습니더. 보일러가
고장난 것 같아예. "
"왜그럴까요. 곧 내려가볼게요."
한참 후 플래시를 들고 들어서며 벙긋 웃는 게 민망스럽다는 표정이다.
"기름이 없네예."
흑흑...지글지글 끓는 방에서 잠을 자고 싶던 우리는 그 새벽에 다시 마을주민의 쉼터인 아래층으로
짐 챙겨 내려왔다. 곧 방은 뜨끈해지는데 가로등은 훤히 비추지, 시계바늘소리는 유독 크지...
암튼 그러저러 밤을 보냈다.
마치 우리 살림처럼 전날 남은 반찬을 꺼내고 냉장고 속 달걀 두 개씩 프라이해 먹으려 하니
가스중간밸브를 작동할 수 없다. 도둑질도 알아야 해 먹지. 물론 저녁과 아침밥 대가는 지불했다.
3명 숙식 합해 50,000원. 마을회관이 아니라 처음 예약한 곳에서 해결했다면 이 금액에서 3-4만원은
더 지출되었을 거다.
그리저리 한 때를 때우고 사당마을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다시 길을 나섰다.
목적지는 대축마을이다.
한데 급할 것도 없고, 바쁠 것도 없다. 점심 전후로 하동읍에만 도착하면 되므로.
우계저수지에 빠진 가을산에 빠지고, 괴목마을 지나고 신촌마을 지나고, 신촌재를 넘는데
특이한 점은 이번 코스는 전부 산을 넘는 코스다. 다른 때와 달리 단 한 둘레길 걷는 이를 만나지 못했다.
더없이 조용하고, 한적하고, 깊은 가을 속을 환히 들여다본 시간이었다.
낙엽송의 바늘 같은 잎이 산
길에 포근하게 깔려 바닥이 보이지 않는데 우리는 또 그곳에 반해 찬탄하고 사진을 찍고...
그렇게 드디어 도착한 먹점마을에서 발목이 잡힐 줄이야. 어쨌든 이날은 돌아가는 날이므로
가는데까지 가다가 하산한다는 일정이었다. 그러나 이 마을주변 새로 지은 예쁜 집에 반해서
이런 곳에 살고 싶다느니, 전원주택을 지으려면 빨리 시작해야한다느니..이러다가 만난 한 주민에게
마음에 쏙 든 그 집에 대해서 뜬금없이 묻다가 말이 이어지고 종내
친구가 구하고 있는 빈집을 본인이 내어놓았다는 집으로 향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마을 앞으로 나오니 이미 점심 때가 가깝다. 다시 뒷산을 다시 넘자니
마음이 먼저 포기를 한 상태, 그러자 그 농부 아저씨가 하동읍까지 택시비 13,000원이면 갈 수 있다고
귀띔한다. 마침 그 집 앞에 세워둔 트럭이 보이기에, 아저씨가 좀 태워주면 안되겠냐고 하니
잠깐 망설임도 없이 수긍한다. 우리는 운전할 사람보다 먼저 남의 트럭에 올라탔다. 2인용 조수석에
3명이 비집고 앉아 낡은 고물트럭은 출렁거리며 산길을 달린다.
전날 재첩국을 먹었으니 오늘은 다른 걸 먹고 싶다고 하자 유명한 추어탕집으로 데려다 주겠단다. 그러면
같이 점심식사라고 하자고 하자 그럴 시간이 없다고 한다. 추어탕 집앞에 우리를 내려주고 돌아서는 트럭
조수석에 15,000원을 놓고 얼른 문을 닫아버렸다. 한사코 안받겠다는 돈을.
배고픈 위를 달래며 추어탕집 문을 여니 굳게 닫혔다. '정기휴일'이라 적혔다. 결국 건너편 재첩국 집에서
전날보다 더 맛있는 생선, 서대구이가 올라온 점심을 맛있게 먹고 나왔다. 역시 8,000원이다.
일행 한 사람은 식당 옆 재첩파는 곳에서 택배주문을 하고 걸음을 재촉해 하동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쉬엄쉬엄 놀며쉬며 걸었어도 하루 16,000보씩 32,000보는 걸은 셈,
너무 힘들어 다시는 안오겠다던 친구도 날이 새자 또 올거라고 한다. 걸어본 자만이, 여행해 본 자만이 그 마력 속으로
점차 빠져드는 법. 내년 청도나 섬진강둘레길을 기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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