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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신문 칼럼

1회 기사-[감성터치] 문턱

by 서정의 공간 2018. 1. 8.





[감성터치] 문턱 /김나현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01-07 19:18:48
  •  |  본지 30면


   
숫자 문턱에 걸려 넘을 문턱을 낮춘 적 있다. 그렇다고 낮춘 문턱이 밀려난 그쪽보다 수준이 낮다거나 한 건 아니다. 다만, 미래를 설계하며 잠시나마 꿈꾼 바를 실행으로 옮길 수 없었다는 게 서러울 뿐. 격려하고 용기를 줘야 할 곳에서 외려 좌절을 안긴 점에 마음 상했다. 나는 도움을 받는 입장이고, 상대는 확실한 목푯값을 염두에 두고 상담해주는 입장이니 고분고분 수긍할 수밖에. 사회에서 약자로 분류된 그 일 이후 한동안 씁쓸함이 가시지 않았다.

도시철도에 빈 좌석이 없을 때 노약자석을 흘깃댄다. 좌석 뒤쪽에 붙은 글자가 선뜻 앉는 걸 저지한다. “장애인 노약자 임산부 좌석입니다.” 나는 과연 저 세 낱말에 해당하는가. 장애인은 아니고, 임산부는 분명 아니다. 그러면 노약자인가? 이 부분에서 아리송해진다. 노약자는 늙거나 약한 사람이라는 뜻일 터. 늙었는가, 약한가로 또 고심한다. 좌중을 둘러보며 나를 적도 삼아 북위와 남위로 분류해 본다. 이때 북위 쪽 비율이 높아 보이면 아직 희망이 있다며 위안 삼는다. 그러나 서 있는 지구력으로 볼 땐 약자라며 주저주저 눈치 보다 슬그머니 엉덩이를 들이민다. 이런 행동마저 서글픈 시절이다.

늙거나 젊은 사람에게나, 무료든 유료든 평생학습의 천국이다. 자기계발이나 자질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강의나 단기강좌, 취미프로그램 등 공부할 거리가 쌔고 쌨다. 이런 공부란 대개 해 본 사람이 하게 되는 것 같다. 자격증도 하나를 따고 나면 연결된 다른 자격증이 보이고 다시 도전하게 된다. 널린 배울 거리를 두고 하지 못하면 손해 보는 기분이 든다. 글 쓴다며 얕은 지식의 우물을 퍼낸 머릿속이 차츰 말라가는 지각도 따른다.

다니던 직장을 3년 전에 그만두었다. 손자 육아 때문이다. 한 번 봐주기 시작하면 기본 십 년이라고 주변에서 말리더라니. 그 말이 하나 틀리지 않았다. 딱 한 해만이라고 못 박은 말은 하나 마나 한 말이 되었다. 문제는 체력은 점차 떨어지고 머릿속은 비어가는 황폐한 증상이 따른다는 거다. 육아라는 고삐에 딱 묶여 모임과 활동에 제약이 생기고 하루가 헐레벌떡 흘러가 버린다는 거다.

뭔가 통풍구가 필요했다. 일과 중 짬을 내어 한 기관의 직업교육훈련프로그램을 신청했다. 수강기관과 연계한 프로그램에는 수강할 과목 폭이 썩 넓지 않았다. 관심 밖인 산업 쪽을 제외하면 대부분 컴퓨터, 조리와 커피, 미용 계열이었다. 상담을 받기에 앞서 어떤 교육을 받을 건지 나름대로 고심하고 갔다.

첫 번째 종목은 네일아트다. 배워서 주변 사람에게 알음알음으로 시술도 하고 부업으로 하다 보면, 골목에 작은 가게를 열어도 되겠다는 그림도 그렸다. 담당자는 네일아트 비용으로 볼 때 요즘 어떤 젊은 여성이 나이 든 사람에게 손톱을 맡기겠냐고 한다. 두 번째 종목을 제시했다. 바리스타다. 요즘 커피집에선 삼십 대 중반만 되어도 채용하지 않는다고 싹을 자른다. 누가 나이를 먹고 싶어 먹었겠는가. 순진한 머리를 망치로 두 번 맞은 기분이었다. 머릿속에 그렸던 모자이크 희망 그림이 산산이 조각나고 있었다. 어깨가 꺾였다. 그러면 처음 생각했던 컴퓨터 교육을 듣겠노라고, 더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몇 가지 따끔한 질문이 따랐지만 우여곡절 끝에 컴퓨터 교육을 듣게 되었다.과정은 어찌 되었건 두 종목 시험을 쳤고, 두 개의 자격증을 땄다. 그중 한 과목은 무려 만점으로 합격해 홈페이지에서 팡파르도 띄워주었다. 사무 행정 능력과 활용능력이 교육 이전보다 향상되었으니 스스로 만족스럽다. 자격증 따서 뭐할 거냐고 혹자는 묻는다. 자격증을 딴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글쎄 능력보유나 앞을 준비하는 자세에 있지 않을까.

저지당한 문턱 앞에서 자존감이 상처받았다. 하지만 자격증은 현실을 직시하게 해준 덕분에 안은 대가다. 아쉬운 감도 없지는 않다. 나이가 문제가 아니라 얼마든지 개척자가 될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올 한 해도 나이 문턱, 학벌 문턱, 능력 문턱, 건강 문턱, 돈 문턱에서 한계에 부딪힐 생들을 응원하고 싶다. 뜻이 간절하면 시나브로 목표지점에 가까워질 거라는 말도 덧붙여서.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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