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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및 관련◆

비가 와도 좋았어 - 나이 든 종부의 단아한 얼굴...

by 서정의 공간 2020. 9. 6.

비가 와도 좋았어 - 나이 든 종부의 단아한 얼굴...

 

2020. 8. 18. 14:31

https://blog.naver.com/return0724/22206383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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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와도 좋았어, 김나현 지음, 수필과비평사,

2020722일 초판 1, 284p, 18,000

 

 

 

여행은 기분 좋은 노동이다. 여행이란 단어 travel”“travail”- 곧 노동이라는 프랑스어에서 유래된 것을 보면 이 말이 틀리지 않다. 잘 쉬고, 잘 먹고, 잘 보고 라는 휴가는 여행과 다르다. 여행은 낯선 곳에서 몸에 배지 않은 풍광을 체득하는 기회며, 이질의 문화에 동화해야 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하는 매우 고욕의 과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꿈꾸는 것은, 퍼질러 쉬는 동물적 휴식에서 벗어나 뭔가 사유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음으로써 특히나 반복적인 지루한 일상을 탈피해 자기인줄 모르고 지냈던 자아를 찾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노동은 매우 지난하다. 현지의 역사, 사정, 문화, 일상, 생활, 음식에까지 자기를 맞춰야 하며, 기간 내내 - 그 기간의 길이는 상관없이 긴장과 사유를 함께 가져야 한다. 이 측면에서 보자면 흔한 여행기는 많지만, 작가와 호흡하며 시각을 온전히 인정할 수 있는 여행기는 드물다.

 

불행히도, 해외여행을 자유롭게 즐길 수 없었던 세대라, 여행규제가 풀리자, 꿈꾸던 해외여행을 즐겼다. 물론 고맙게도, 여행자유화 이전에 몇 번의 기회를 가진 해외출장이 자유여행의 기틀을 잡아준 것도 사실이지만, “이 묶인 출장은 현지 통역, 좋은 잠자리가 제공되더라도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오는 감흥은 적었다. 다행히 맡은 일이라는 것이 상대국의 문화정책이나 문화시설에 관련된 업무이나 보니 돈 버는 일보다야 개인적 취향과 맞는다고 하더라도, 개인의 욕심을 곁눈질해야 하는 것은 제한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아마 일정에 쫓기는 소위 투어를 질색하고 제대로 영어 단어 하나 모르면서도 자유여행으로 10여개국을 즐긴 것은 여기서 기인한다. 이런 배경이니, 한번 여행을 다녀오면 소위 몸살을 앓아버린다.

 

 

 

 

극성맞게 다녔던 여행에서 잠시 멀어졌다. 가끔 블로그에서 남의 여행을 곁눈질하며 아쉬움을 달래고는 있지만, 워낙 고약한 눈을 가졌으니 맘에 들 리 없다. 글은 대충 읽고 사진을 열심히 보는 것은 텍스트는 글쓴이에 따라서 천차만별이기는 해도, 사진을 큰 차이가 없으므로, 순간 이동을 하듯 현지 그 자리에서 서 있는 것처럼 잠시 시간을 보낼 수 있음에 만족하는 편이다. 그러던 차, 인터넷이 아닌 활자로 사진과 텍스트가 함께 있는 여행기를 만났다. 수필가 김나현의 비가 와도 좋았어.

 

김나현의 여행 산문집인 비와 와도 좋았어는 그간 작가가 여러 경로를 통해 발표된 - 혹시 신작이 있는 지도 모를 여행기들을 묶었다. 기 발표된 글이라 해도 코로나19에 대한 언급들이 기존에 작품에 섞인 것을 보면 책으로 묶으면서 조금씩 손을 본 모양인 이 책을 통해 다수의 수필상을 수상한, 수필가이면서 사진작가, 그리고 여행작가라는 타이틀을 쥐고 있는 작가의 다양한 기억들을 훔쳐 볼 수 있는 기회 - 더구나 이미 3권의 수필집과 1권의 선집을 발간한 이력을 가진 작가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또 다른 독서의 즐거움이다.

 

묵직한 에세이를 보자고 한 것은 아니지만, 이번 비가 와도 좋았어는 변형을 꿈꾸는 외고집을 보였다. 그 하나는 작가는 여행 장소를 과감하게 파괴했다. 흔히 지역, 장소를 중심으로 한 편을 끝내는 소위 여행기의 툴에서 벗어나 여름, 겨울, 가을, 봄의 순서로 작가의 여행경험을 계절별로 묶음으로 해서 한 계절의 다양한 장소의 풍광을 즐길 수 있는 효과를 가진 것이다. 또 하나는 일반 여행기에서 만날 수 있는 여행지의 정보 대신에 여행, , 후까지 함께 한 작가의 일관된 사고의 흐름과 역사, 사람에 대한 애정으로 글을 것이다. 이런 두 개의 특징은 흔한 여행기와 달리 다소 복잡하고 내면적인 기조를 유지함으로써 기승전결식이거나 주마간산격으로 나열한 일반 여행기와 달리 독특한 향기를 품고 있다.

 

 

 

무엇보다 "비가 와도 좋았어는 작가의 눈에 들어가 같은 시점으로 그가 겪은 풍광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머리에 함께 하는 즐거움이 있다. 현장성은 모두 사념으로 대체되면서 드러낸 장소는 장소가 아니라 상상속의 장소로 치환됐으며, 친절한 안내보다는 도리어 작가의 고집스러운 태도- 때로는 사람은 역사의 갈피에 묻힌 장소에서 그 역사적 사람에 이입된 작가 자신을 강조함으로써 여행기가 아닌 여행기가 되어버리기도 했는데, 그 대신, 이 책에서 소개한 현장들은 또 다른 정보를 함께 해야 찾아갈 수 있다는 단점도 능히 감수할 만큼 손쉬운 장르로 오해받고 있는 산문에서 이런 작업을 보일 수 있는 작가는 과감한 시도가 눈에 띄었다.

 

특히나, 이번 책은 그 여행지를 오랜 시도 끝에 얻은 귀중한 사진도 함께 수록됨으로 해서 어쩌면 앞서 언급한 부족함을 대체해주는 효과까지 보여주고 있으며, 때론 본문과 연결되어 보이지 않는 사진을 통해서 여행지에서의 작가와 여행객, 소녀감성과 성숙한 사념의 갈등구조를 강조하려는 듯이 읽히는 재미도 있었다.

 

장차 여행이란 배부른 꿈으로 그칠지도 모르는 일, 하여 흔적을 들추는 작업이 즐겁고 또 귀하다라는 문장은 단지 이 책의 서문만은 아닐 것이다. 작가로써 치열한 단어 - 특히나 작가의 토박어는 매우 반갑기도 한 -와 함께 다양한 경험을 글로 빚어내는 일은 작가의 일상에서 품어 나오는 향기,그 향기에 담아 놓은 기억으로 인해 작가 자신도 저장된 향기가 언제까지 유효할지 그게 걱정”이라고 아쉬움을 표했지만, 이렇게 정리되면서 이제 향기는 개인의 것이 아니라, 모두의 것이 되어 버릴 것이고, 독자로써 또 어느 날 나이든 종부의 민얼굴처럼 단아한 작가의 또 다른 글을 만나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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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가 와도 좋았어 - 나이 든 종부의 단아한 얼굴... |작성자 관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