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우포에서
봄이 기웃대는 사월, 터질 것 같던 겨울의 잉잉거림이
돌돌 물결로 밀려든다.
오래된 습관처럼 불쑥 가방을 싸던 그 느닷없음으로
나는 지금 우포에 있다.
봄을 버티는 덩그런 기러기, 귀향무리 놓치고
허둥대는 눈빛이 망연하다.
내게, 저 기러기만큼 삶을 걸 간절한 게 있긴 한가
동심처럼 해맑은 태초의 땅, 움 틔우는 소리 가득하다
휘늘어질 왕버들 가지마다 지천으로 흐드러질 자운영 밭에
성급한 내 맘처럼 성큼성큼 물이 오르고 있다.
새벽안개 아침햇살에 스러지듯 슬며시 겨울이 물러가
잠시 무료한 때, 봄이 오는 말간 길목에는
뜬금없이 이곳에 있고 싶다.
서성이는 바람에 휘감겨 그 붉은 황토 바닥이
봄바람에 들쑤셔진 내 안처럼 자글거릴,
봄이 기웃대는 사월에는 우포에 있고 싶다.
2006.04.02 우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