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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일본편

《설국》의 다카항高半료칸旅館을 찾아

by 서정의 공간 2014. 5. 31.

 

 

《설국》의 다카항高半료칸旅館을 찾아

 

 

 

 

 

 

《설국》의 다카항高半료칸旅館을 찾아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이렇게 시작되는 소설《설국》의 첫 문장은 절묘했다. 이는 기차가 국경을 잇는 마지막 터널을 벗어날 때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이다. 주인공 시마무라를 따라 긴 터널을 벗어날 때 시야가 환해지는 기분을 안겨준다. 첫 문장 속 국경은 군마현과 니카타현의 접경을 일컫는다.

소설을 따라, 눈에 보이는 거라곤 온통 눈뿐인 차갑게 가라앉은 적요한 마을에 왔다. 전혀 딴 세상처럼 첩첩이 겹쳐진 우람한 산이 봄빛에 새하얗게 반짝인다. 기차가 이전 역을 출발했을 때만 해도 차창밖엔 한창 벚꽃이 만개하고, 들판에는 보리가 새파랗게 자라거나 때 이른 아지랑이가 보일 듯 포근했다. 한데 고장이 바뀌는 터널을 빠져나오자 4월의 겨울이 머물고 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터널을 벗어나며 보았을 이 고장만의 풍취가 소설 첫 문장으로 탄생했음을 알겠다.

 

 

소설의 핵심은 순간순간 덧없이 타오르는 여자의 정열에 있다. 개통한 지 얼마 안 된 시미즈터널 밖으로 나오면 눈의 고장, 설국이 있다. 그 한적한 곳의 온천장에서 게이샤로 살아가는 고마코, 그녀에게서 발산되는 야성적 정열과는 대조적으로 순진무구한 청순미로 시마무라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요코. 이 두 여자를, 도쿄에서 온 무위도식하는 여행자 시마무라는 허무의 눈으로 지켜본다.

아름다운 게이샤 고마코의 시마무라를 향한 열정보다도, 상상이 되지 않는 엄청난 눈에 덮인 세상이 과연 어떨까 궁금했다. 오래전부터 설국에 가기를 꿈꾸었다. 과연 집은 눈에 파묻혀 지붕만 보이고, 적설량을 표시하는 긴 작대기의 어디까지 눈이 쌓였을까 하고. 막연하게 꿈꾼 지가 언제부터였는지 가마득한데 지금 믿기지 않게도 그 설국에 와있다. 와서 보니 지붕만 빠끔 보이는 게 아니라 지붕은 눈에 덮여있다. 거리에 쌓인 잣눈을 발로 툭 차보고 손으로 뭉쳐본다. 이런 눈 덕분에 스키마니아가 몰려들고, 문학계의 큰 별을 찾는 독자와 문학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도쿄에서 출발한 니카타 행 고속열차는 터널을 나오면 금방 에치코유자와역에 닿는다. 하얀 세상이 깜짝 펼쳐지는가 싶은데 기차는 이내 역내로 진입한다. 눈을 디개한 마음이 실망하지만 그 아쉬움도 잠시다. 마을 중심을 가른 길을 따라 다카항 여관으로 가는 길에 평생 보지 못한 규모의 눈 무더기를 보았다. 역에서 20분여 쉬엄쉬엄 걸어 당도한 다카항여관 앞, 소설 탄생지임을 알리는 간판 앞에서 두 손을 치켜들고 쾌재를 불렀다. 제목만으로 눈 나라를 꿈꾸게 한 장본인이었기에. 특히 겨울이면 온천 여관에 머물며 글쓰기를 좋아했던 가와바타 야스나리. 그가 묵으며 몇 편의 소설을 집필한 바로 그 여관 앞에 서서 버킷리스트 하나를 지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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