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작가》2015,11/12
특집
‘아무르강변’ 노을 속에서
피에트라 강가 둑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손은 꽁꽁 얼었고,
다리엔 쥐가 났다. 매 순간, 쓰기를 그만두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아무르강을 잠식하는 석양 속에 서 있다. 하바롭스크 도시를 끼고 흐르는 거대한 강물도 불그죽죽 물든다. 종일 들고 다닌 카메라 무게에 어깻죽지가 뻐근하다. 이럴 때면 나도 매순간 찍기를 그만두고 싶은 충동에 시달린다. 카메라 든 손은 얼얼하고 팔에는 쥐가 난다. 그래도 언제 볼지 모를 아무르강의 석양 무렵은 앵글을 잡게 한다.
여행자는 아무르강을 보려고 여기에 온다는데, 나는 그냥 왔다. 생각 없이 와서는 한 달간 주저앉고 싶단 생각을 한다. “오랫동안 강물을 바라보았다. 눈물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목 놓아 울었다.”는 소설 속 필라가 떠오른다. 나도 노을 지는 강가에서 속울음 운다. 이념이 다르고 동토의 땅이라는 사고를 했던 나라에서 저녁 풍경에 젖고 있다. 서녘 하늘이 펼치는 파노라마에 정신이 무너진 모양이다. 발 뒤쪽 구조물에 걸려 넘어졌다. 눈물이 왈칵 북받쳤다. 아프기도 했고, 떠날 시간이 정해져 있다는 게 초조하게 했다. 겨울엔 꽁꽁 언다는 이 강 위로, 종일 눈발이 날리는 광경도 보고 싶어졌다.
눈, 자작나무, ‘닥터 지바고’ 같은 것들이 떠오르는 땅. 여행객이 러시아에 거는 가장 큰 기대는 아마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아닐까. 이 열차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동서를 횡단하는 열차다. 7박 8일이 걸려 모스크바에 도착하면 제네바 등 유럽으로 향한다는, 언젠가는 그 열차에 탑승하고 말리라. 아쉬움 달래며 일부 구간인 하바롭스크까지 가는 기차를 탔다. 14시간이 걸렸다.
기차가 하룻밤을 달릴 때 소음을 막기 위해 귀마개를 했다. 덜컹대는 침대에서 잠을 청하며 여행 중임을 실감한다. 광활한 대지를 시속 80~90km 정도로 달리는 기차 밖 풍광은 온통 초록 세상이다. 세상과 단절되어 맞닥뜨린 많은 시간을 감당하는 일은 오로지 여행자의 몫, 하지만 생각을 비우고 그냥 시간만 보내면 된다. 그러다 새벽 네다섯 시쯤 창밖이 희붐해 오면 안개를 휘감은 산야가 스쳐 지나고, 여름철 무리 지어 핀 야생화도 볼 수 있다. 사회주의 땅에도 꽃은 피는구나, 라는 얄궂은 생각이 들었다. 뽀얀 나무껍질을 빛내는 자작나무 군락도 이곳이 러시아령임을 알린다.
4인실은 한 두 사람이 설 정도의 공간을 사이에 두고 2층 침대가 마주 보고 있다. 맞은편 자리엔 러시아인 모자가 탔다. 처음 탄 우리의 서툰 짐정리와 달리, 자주 타 본 듯 그쪽은 순식간에 짐정리를 끝낸다. 그들과 손짓과 짧은 영어 몇 마디로 소통한다. 여행해 본 경험으로 러시아에서처럼 영어소통이 안 되는 곳도 드문 것 같다.
하바롭스크는 규격이나 무게감이 느껴지는 블라디보스토크나 우수리스크와는 달리 온화하다. 극동의 대도시임에도 번잡하지 않다. 하늘은 공해 없이 파랗고, 풍광명미하다. 녹음과 어우러진 초록, 파랑, 금색, 붉은색 지붕이 화사하다. 거기에 뾰족이 세운 첨탑과, 아치형 지붕을 주로 한 러시아 국교인 정교회 건물들에 시선을 빼앗긴다. 러시아라는 나라에 가졌던 굳은 인식을 희석한 게 있다면, 바로 정교회 건물일 것이다.
강바람이 선들 불고, 잘 다듬은 산책길이 있는 아무르강변 공원이다. 이곳을 떠나는 전날 밤부터 시간이 아까웠다. 걸어보지 못한 강 가녘과, 석양 무렵 운치에 좀 더 젖고 싶었다. 이 큰 강에 하바롭스크 도시가 거꾸로 잠긴 장면도 미처 보지 못했다.
때마침 해넘이 축제가 시작된다. 전망대 건너 쪽 건물이 부신 빛을 반사한다. 하늘엔 큰 붓으로 그림물감을 휘갈긴 듯 구름이 현란하다. 강을 낀 도시가 통째 석양을 머금었다. 카메라를 들고 어찌할 바 모른다. 딱 이 순간에만 허락된 장엄함일 것이기에.
순간을 놓칠까 서두른 탓이었다. 몸의 방향을 건물 쪽에서 일몰 쪽으로 180도 돌리려다 사고가 났다. 바지를 입었기에 망정이지, 카메라가 부서질까만 신경 썼다. 몸을 지키지 못했다. 정육면체의 쇠 구조물에 걸려 뒤로 주저앉듯 자빠졌다. 이 난리 통에 전망대에 있던 관광객이 단말마의 비명을 냈다. 괜찮은 척했으나 절대 괜찮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석양은 지지, 노을은 펄펄 타고 있지. 고통의 강도와 노을의 강도가 함께하자 내 몸이 타버릴 것 같았다.
이런 아무르강도 시대의 회오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러시아 혁명 시기 수많은 사람이 처형당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사회주의 혁명가로 알려진 김 알렉산드라도 포함됐다. 그때 처형한 사람들을 차가운 이 강에 던졌다고 한다. 당시 물들였을 핏물은 희석되었겠지만, 강물이 마르지 않는 한 역사의 진실은 희석되지 않을 것이다. 이곳엔 일제의 핍박을 피해 이주해 온, 조선인의 후손 고려인이 만여 명 산다고 한다. 하나의 소수 민족을 이뤄 살아가는 이들의 뿌리는 한국이 아닌가. 타국에서 다른 얼굴 모습으로 헤쳐 나왔을 그들 삶에 마음이 아리다.
강변공원을 쭉 걸어가면 성모승천사원이 나온다. 꼭 들르고 싶었던 곳이다. 이곳에서 강까지 긴 계단이 이어졌다. 계단 저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교회 지붕이 마치 하늘에 떠 있는 듯 보여 이 계단을 천국의 계단이라고 부른다. 계단 아래쪽에서 올려다본 청색 지붕이 일몰 속에서 시리도록 푸르다. 나는 이 계단을 목줄 풀린 강아지처럼 오르내렸다. 다친 다리는 욱신욱신 아팠다. 날이 금세 어두워졌다. 고요한 어둠 속에 덩그러니 남자 금방 울음이 터지려 했다. 무서움이 엄습해온 탓이다. 고작 3분여 거리의 숙소로 가는 길을 못 찾아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때 저만치서 걸어오는 낯익은 그림자가 보였다. 룸메이트였다. 저도 나를 기다리며 긴장했던가, 우리는 서로 반가워 눈시울이 그렁해졌다. 추억은 나이 든 자의 몫이라 해도 좋다. 하나의 추억거리라도 더 챙기려고 그토록 배회했지만, 그래도 못내 아쉬움이 남는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엑스레이 사진을 찍고, 깁스도 했다. 오금에 고인 손바닥 넓이의 멍은 한의원에서 침으로 뽑아냈다. 이렇게 여행 후유증도 사위어간다. 이제 나도 필라처럼 쓰기 시작해야겠다. 마음에 깔린 아무르강 석양이 다 사위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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