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작가>2017.1/2
부산스토리투어(3)
부산 원도심, 그 숨은 매력 속으로
-국제시장 기웃거리다
재래시장은 그 고장의 속 모습을 가장 적나라하게 볼 수 있는 곳이다. 그곳엔 삶의 민 모습이 가감 없이 와 닿는다. 이름도 거창한 국제시장은 바다와 인접해 무역을 통한 신문물을 가장 빨리 접했다. 그중에서도 부평시장은 꽤 오래된 전통시장으로 최근 개설한 야시장이 큰 호응 속에 자리 잡아가고 있다.
국제시장 들머리인 남포동엔 영화산업의 발상지인 조선키네마 주식회사를 비롯한 여러 극장이 있었다. 이곳 비프 광장은 1996년에 부산국제영화제가 처음 열리면서 만든 상징적인 공간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부산극장과 대영 시네마만이 그 명맥을 유지하는 실정이다. 영화제 행사가 대부분 영화의 전당 쪽으로 옮겨간 때문이다. 유명 배우와 감독들의 핸드프린팅이 새겨진 비프광장은 다녀간 배우들의 숨결을 느끼며 걷는 즐거움도 있다. 유동인구가 많고 거리 포장마차에서는 지나는 이를 냄새로 유혹한다. 남포동 극장가가 젊은이의 거리라면, 국제시장은 아무래도 살림하는 주부들 발길이 잦다고 본다.
국제시장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 거주지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런 역사를 깊숙이 간직한 채 그야말로 없는 게 없는 이 국제적인 시장이 되었다. 볼 게 많고 먹을 것도 많으며 구경거리가 넘쳐난다. 일본이 물러간 후 한국전쟁의 피란역사도 녹아있는 국제시장. 동시대를 살았던 많은 노년의 눈시울 적시게 했던 영화 <국제시장>의 배경이 된 곳이다. 영화에 나온 가게 ‘꽃분이네’는 유명세를 탔다.
부산 원도심스토리투어, 이번엔 국제시장을 기웃거려본다. 이번에도 이야기 할매가 동행했다. 남포동 지하상가 14번 출구 부산 종합관광안내소에서 국제시장을 향해 출발한다.
BIFF광장-먹자골목, 국제시장-보수동 책방골목-부평깡통시장
이렇게 돌아보는 일정이다. 자갈치 시장 건너편 대동 약국 뒤에 바다를 막았던 축대의 흔적이 남아 있다. 발 딛고 서 있는 도로가 바다였다는 말이다. 바다가 지금은 자동차가 내달리고 고층빌딩이 빼곡히 선 육지가 되었다. 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상승하면 바닷물은 육지를 서서히 잠식해 갈지 모른다. 백 년, 아니 오십 년 후면 발 딛고 선 이곳이 다시 바다가 될지 모를 일, 본디대로의 회귀는 어쩌면 자연의 순리일지 모르지만, 미래에 대한 상상만으로도 무섭다.
남포동 극장가를 지나면 국제시장이 시작된다. 젊음의 거리, 만물의 거리, 깡통 시장, 아리랑 거리, 구제 골목으로 이뤄진 대규모 시장이다. 요즘도 ‘도떼기시장’으로 입에 오르내리는 곳이다. 중고품이나 고물 등 별별 물건을 도산매하고 방매하며 비밀 거래하는 시끌벅적한 비정상적 시장이란 의미를 지닌다.
주전부리 천국인 먹자골목엔 비빔당면이며 단팥죽, 떡볶이, 어묵, 식혜, 튀김 등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쌔고 쌨다. 국제시장에서 50년 이상 시장상인의 허기를 채워준 음식 만물상 실비골목도 빼놓을 수 없다. 만물의 거리는 어떨까. 가게마다 빼곡하게 진열된 가전제품이며 공구, 이불과 별별 생필품이 목을 빼고 손님을 기다린다. 가게 경제가 빠듯하다면 국제시장을 이용하라고 널리 알리고 싶다.
책방골목으로 가는 길목에 자동차매연을 고스란히 맡고 선 동상하나가 있다. 동상이 선 곳은 함경도 손 씨 부부가 미군 잡지를 팔기 시작한 자리라고 한다. 한국전쟁 시기 피난민과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 지식인은 자신이 공부한 책을 내다 팔거나 저당 잡히고 필요한 헌책을 사가서 학업을 이어갔다. 초창기엔 피난민이 짊어지고 온 책뿐 아니라 옷 등 다양한 물건을 팔았다. 책방골목엔 헌책 속에서 보석 같은 한 권의 책을 찾아보려는 이들이 이곳을 찾는다. 헌책 더미에서 절판된 도서도 구할 수 있다. 교과서, 아동도서, 소설교양류, 사전류, 각종 교재며 실용도서, 고서, 잡지 등 다양한 품목을 취급한다.
주변 카페에선 북토크나 북콘서트, 시 읽기 등 다양한 행사를 접할 수 있다.
책방골목이 끝날 즈음 깡통시장 간판이 보인다. 일본인이 귀국하면서 가진 물건을 팔기 시작한 것이 깡통시장의 시작이다. 한국전쟁 때 미군 부대에서 나온 보급품과 통조림 등을 팔면서 더욱 입소문을 탔다. 옛날 이 부평동 시장에 한국인이 운영하는 곳은 이발소와 농협 앞 여관 두 곳뿐이었다. 나머지 상인은 죄다 일본인이었다. 한국인에게 번 돈으로 그들은 얼굴이 번들거리게 잘 먹고 잘살았을 것이다.
구하지 못하는 외제 물건이 없었다는 말이 나돌았던 깡통시장에서 죽의 내력을 빼놓을 수 없다. 변변히 먹을 게 없던 피난민들은 밀가루를 풀고 쌀 몇 알 넣고 끓인 죽을 쑤어 먹었다. 이것이 바로 풀떼기 죽이다. 현재 죽 골목의 터전이 되었다. 부산의 역사와 세월을 같이하는 깡통시장엔 점포가 무려 400여 개에 달한다. 이렇게 붐비는 시장의 통로에 야시장이 들어섰다. 비좁아 오가는 행인과 종종 부딪히며 지나다보면 그 집안의 안살림 같은 사람 사는 세상을 만난다.
국제시장을 기웃거리다 보니 한 편의 시가 떠오른다. 시골에서 올라와 열여섯 살에 국제시장에 취직하고, 스물네 살에 도매상을 개업해 40여 년 스카프장사를 해온 국제시장 덕성상회 주인 정희선 씨의 자전적 시다.
5-1.미군잡지를 팔기 시작한 장소에 세운 동상.jpg
봄이면 봄 스카프를 팔고
여름이면 손수건과 쿨 스카프와 부채를,
가을이면 가을 스카프를 팔고
겨울엔 머플러와 숄을 판다.
사계절 유행품을 팔고 있지만
유행을 타지 않는 딱 하나
‘나’라는 사람이 사십 년째 버티고 있다.
*이야기할배・할매와 함께 걷는 부산 원도심스토리투어는 부산시와 부산관광공사가 부산 원도심(중구, 서구, 동구, 영도구)지역에 산재한 근대역사문화자원과 부산의 먹거리, 볼거리, 쇼핑을 연계하여 만든 관광코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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