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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문화』

부산스토리투어④-이바구길 걷다

by 서정의 공간 2017. 1. 27.



<여행작가>2017.3/4



부산스토리투어④

부산 원도심, 그 숨은 매력 속으로

-이바구길 걷다



  





                                                                 


동구 초량의 이바구길. 이바구란 ‘이야기’라는 뜻의 경상도 방언이다. 이 길에는 최초의 근대식 개인종합병원인 백제병원, 최초의 창고인 남선창고 등 최초를 앞세운 곳이 눈에 띈다. 이는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이는 항구가 가까웠기 때문으로 본다. 일제 수탈시기와 한국전쟁을 삶 깊숙이 겪은 이곳. 항구는 산복도로 사람들 삶의 터전이 되어 가파른 168계단을 오르내리며 현재를 일군 바탕이 되었다. 역사의 기구한 통로를 지나와 현재에 이른, 골목이 품은 삶 속 이바구길을 걷는다.


이바구길은 초량 부산 외국인 서비스센터에서 시작하지만, 통상 상해문에서 출발한다. 이바구할배와 동행하기로 예약이 되었다. 외국인 서비스센터에서 한없이 기다리다가 하마터면 이바구할배를 놓칠 뻔했다. 이날 제주도에서 벤치마킹 차 방문했다는 공무원 일행과 함께 걸어 분위기도 시종 화기애애했다.


코스는 ‘상해문(화교초등학교)-남선창고 터-옛 백제병원-이바구길-초량교회-168계단-김민부전망대-이바구공작소-당산’으로 이어진다. 상해문은 청나라와 조약이 성립된 시기엔 청관문이라 불렸다가 최근엔 국제거리로 불린다. 주민 입에 오르내린 명칭에서 시대 변천사를 읽는다. 큰길 건너편 매립지에 부산역이 들어선 후 일명 기생 거리로 불린 텍사스촌이 있던 곳으로 유명하다. 화교촌으로 불리면서도 항구가 가까운 이유로 러시아인을 더 자주 만나는 거리이기도 하다.


화교 초등학교를 지나고, 붉은 간판이 즐비한 길을 얼마간 걷자 남선창고 터가 나온다. 남선창고는 1900년경 함경도에서 해산물을 싣고 와 보관하던 최초의 물류창고다. 지금은 한 유통회사가 매입하여 대형슈퍼를 운영 중이다. 아쉽게도 붉은 벽돌로 된 벽 한쪽만 보존된 상태다. 초창기엔 이곳에 오는 사람은 다 흥한다는 뜻으로 회흥사로 불렸다. 그 상권이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된다. 주로 명태를 많이 보관했다 하여 일명 명태 고방이라는 이름도 붙었다. 당시 초량 사람 치고 남선창고 명태 눈알 빼먹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말도 전한다.


남선창고 터와 접한 구 백제병원은 붉은 벽돌 외관이다. 때 묻은 벽돌에서 묵은 세월이 느껴진다. 콘크리트 건물들 사이에서 붉은벽돌건물은 우뚝 고풍스럽다. 부산에 남아있는 근대건축물 중 용도변경을 통해서나마 다행스레 보존되고 있는 곳이다. 1920년대에 목조건물로 지었는데 이를 구경하려는 구경꾼과 병원환자가 몰렸다고 한다. 독일에서 30명의 간호사를 초빙할 만큼 성업했다. 그러다 병원이 부도가 나자 일본에서 가져온 붉은 벽돌로 개조한 요리 집이 들어섰다. 지금은 카페로 변신해 미장하지 않은 옛 창고 분위기를 풍기며 오가는 손님을 맞는다. 원 벽돌 벽과 창틀, 벽의 공간까지 살린 카페 내부에는, 구석구석 삼삼오오 모여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다. 제주도에서 온 이들은 꼭 다시 들르고 싶은 곳이라며 떠남을 아쉬워한다. 나도 아늑한 자리 하나 차지하고 여유 속에 있고 싶어진다. 예스럽고, 지나치게 다듬지 않은 수수함을 찾는 이들이 모여 들만 하다. 역사의 진실이 무엇이었든 보존하면, 이렇듯 과거가 현재로 이어지고 다시 미래를 열어갈 것이다. 구식도 보존하면 명물로 태어난다는 걸 진작 알았더라면 더 많은 옛것이 건재하지 않았을까 싶다.


초량초등학교는 현 부산역을 매립하려고 흙을 파낸 자리에 설립했다. 그 옆 초량교회는 부산에서 최초로 생긴 교회다. 항일민족독립운동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신사참배반대운동의 진원지 구실을 한 점에서도 역사적으로 큰 의의가 있는 곳이다.


초등학교와 교회 사이 담장을 따라 동구를 이어온 자랑스러운 얼굴이 큰 액자로 걸려있다. 당사자나 그 후손 뿐 아니라 초량 사람이 다 뿌듯할 것 같다. 역사와 정신을 이끌어온 사람들-독립운동가 장건상과 박재혁, 정치가 허정, 여성정치가 박순천, 의사 장기려, 연극연출가 이윤택, 초량초등학교 출신 나훈아, 이경규, 박칼린 등-이다. 부러운 시선으로 이 담장을 지나면 이바구정거장을 지나며 168계단으로 이어진다.


168계단은 산복도로에서 부산항까지 가장 빨리 갈 수 지름길이었다. 경사가 무려 62도다. 난간을 잡고서 걸어 올라갈 만한 경사다. 지상 6층 높이의 아찔한 계단에서 부산항까지 오르내린 민초들의 발자취를 더듬는다. 역사를 지켜보고 버텨낸 마모된 계단, 계단을 올라가다 뒤돌아보니 부산항이 눈앞이다. 이날 마침 장이 열리고 있다. 프리마켓 168계단 장이다. 매월 마지막 토요일에 정기적으로 서는데, 운 좋게 딱 걸렸다. 손으로 만든 각종 액세서리며 인형, 지갑, 향초, 비누, 장식품 등을 팔고 있다. 장을 구경하고 물건을 사느라 일행을 놓칠 뻔했다. 리본 장신구를 몇 개 샀다. 옷에 꽂고는 여행 분위기를 냈다.


168계단 끝에 김민부전망대가 있다. 김민부 시인은 부산고 1학년 때 동아일보 신춘문예(시조)에 입선하고, 졸업하기 전 한국일보 신춘문예(시조)에 또 당선돼 천재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그러나 집에서 난 불로 32세에 요절해 안타까움을 샀다. 전망대는 가곡 ‘기다리는 마음’으로 알려진 시인을 기리고자 부산항이 잘 보이는 168계단 옆에 만들어졌다. 이곳에 서니 부산항과 부산항대교가 보이고 탁 트인 시야에 가슴이 후련해진다. 이바구할배는 김민부문학제가 열리는 걸 모르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김민부문학제는 김민부 시인을 추모하고 그의 문학 세계를 널리 알리고자 2011년에 시작했다. 낭송, 시극, 합창 같은 실내 행사와 문학 특강, 거리 시화전, 시 낭송 등의 외부행사로 진행한다. 시인의 이름을 딴 전망대에 마음이 오래 머문다. ‘일출봉에 해 뜨거든 날 불러주오……’, 속으로 노래하며 자리를 뜬다.

이바구공작소 초량 산복도로에 위치했다. 해서 도시가 저만치 발아래로 보인다. 공작소는 그 이름처럼 이야기가 담긴 곳이다. 지난 이야기와 현재의 이야기가 어우러지고 새로 생겨나는 공간이며 곳간이다. 이곳까지 둘러보면 산복도로를 건너 당산으로 향한다.


이바구길은 시내 쪽에서 올라올 수도 있지만 산복도로에서 내려가는 길도 괜찮겠다. 산복도로를 다니는 시내버스도 제법 있다. 86, 333, 38, 186, 190번이다. 부산역에서 출발하는 2인 탑승용 이바구길 자전거를 이용할 수도 있다. 이용 요금은 1인 10,000원이다. 운전자가 해설도 곁들이니 걷기가 힘들다면 이를 이용해도 좋을 것이다.


 

이야기할배・할매와 함께 걷는 ‘부산 원도심스토리투어’는 부산시와 부산관광공사가 부산 원도심(중구, 서구, 동구, 영도구)지역에 산재한 근대역사문화 자원과 부산의 먹거리, 볼거리, 쇼핑을 연계하여 만든 관광코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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