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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문화』

부산특집-부산의 벽화마을을 찾아

by 서정의 공간 2017. 3. 21.






부산 벽화 마을을 찾아

                                                           

한국전쟁은 계단식 마을을 낳고, 산복도로를 만들었다. 당시의 무허가 판자촌이 현대에 와서 벽화 마을로 거듭나고 있다. 그 현주소에는 앞집과 뒷집, 옆집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좁은 골목이 실핏줄처럼 집을 연결한다. 벽화가 탄생하자 구경하려는 사람이 몰려온다. 관광객이 담장 너머 삶을 엿보는 게 유쾌할 리 없다. 소음에 지쳐 이사 나가는 일도 생긴다. 방문자는 날마다 그런 일을 겪을 주민을 생각하면 걸음이 조심스러워야 한다. 요는 외부에 보일 목적이 아니라 그곳에 사는 이가 먼저 좋아해야 하고 행복해야 한다고 본다.

부산에 벽화 마을이 처음 기획되고 조성된 곳은 안창마을이다. 그 후 여기저기 벽화 마을이 생겨났다. 벽화는 드러내기 용이기 전에 주민을 위한다는 목적이 우선해야 함을 다시금 생각한다. 그중 몇 곳을 소개한다.


~안창마을

  범내골 인근의 교통부를 지나면 갑자기 좁아지는 오르막 골목이 나온다. 그 길을 따라가면 길 끝 양지바른 곳에 옹기종기 앉은 마을이 나온다. 이곳도 피난민의 판자촌으로 형성되었다. 한때 부산의 대표 달동네로 인식된 적도 있다. 안창마을 앉음새는 그리 경사가 심한 편은 아니다. 골목 담벼락 그림이며 미술품이 아기자기하다. 대문마다 시선을 끈 건 문패며 번지다. 미술 시간에 조몰락거려 만든 것 같은 앙증맞은 문패를 보며 그 주인을 떠올린다. 빨간 고무통 채소밭도 어김없이 따스한 골목에 줄지어 앉았다. 마을이 주는 느낌은 깨끗하며 따뜻하고 평화롭다. 벽화가 없더라도 좁은 골목길을 걷는 마음이 푸근하다.


~매축지마을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자꾸 돌아본 마을이다. 작고 낮은 집들이 거의 한 몸체처럼 붙어 있다. 달린 문도 작고 지붕도 키 높이를 겨우 벗어났다. 집 안이 좁으니 살림살이도 집밖에 나와 있다. 골목은 혼자 걸을 정도의 폭이다. 그 골목에 빨랫줄을 치고 빨래를 넌다. 과거 어느 시간으로 들어간 느낌이다. 카메라로 궁색한 삶을 구경하는 사람으로 보일까 조심스럽다. 일제강점기 때 바다를 메워 만든 지역. 마을이 생겨난 당시에는 부두에 내린 마부와 말, 짐꾼이 쉬던 곳이었다. 주변엔 고층건물이 위압하듯 높이 솟아 있다. 마을은 오롯이 고립된 섬처럼 납작 엎드렸다. 현대라는 액자에 걸려있는 추억 속의 과거 같다. 연탄을 담은 빨간 고무통이 집집이 나앉은 골목에서 돌아 나오지 못하고 한참을 서성댔다. 매축지가 웅성웅성 말을 건네 왔기 때문이다.


~흰여울마을

영도 흰여울마을은 바다를 굽어보는 언덕 높이에 자리 잡고 있다. 바닷길에서 올려다보면 저만치 하늘에 마을이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세찬 바닷바람을 어떻게 견디고 살까 싶다. 그림 같은 마을이 있다면 바로 이런 마을일 것이다. 절영해안 산책로를 걷다가 계단 따라 마을로 올라가도 좋고, 마을에서 피아노계단을 밟고 바다로 내려와도 좋다. 요즘 젊은이들은 용케 이런 곳을 찾아온다. 셀카봉은 들었지만 흥청거리는 명승지에서보다 편안해짐을 아는 그 마음이 기특하다. 가마득한 담벼락 위로 마을을 유람하는 뭉게구름을 보느라 목이 아프다. 비 오는 날 흰여울점빵에서 바다를 굽어보며 먹는 라면 맛은 또 어떻고.


~닥밭골마을

벽화마을을 취재하며 들른 마을은 예전에 다 갔던 곳이다. 그러나 벽화가 퇴색하여 그림이 바뀔 수도 있을 터라 재방문했다. 그중 닥밭골마을이 좀 낯설어졌다. 조형물도 여럿 생겼고 치장도 늘었다. 보여주기나 경쟁을 인식한 때문인가. 이름도 토속적인 이런 마을을 찾는 까닭은 비까번쩍한 신식 외관을 보려 함이 아닐 것이다. 각박한 삶에서 늘 지속하는 긴장을 풀고 휴식을 겸하는 시간이기도 할 터. 이곳에 간 날, 아가씨 몇 명이 깔깔대는 소리가 한동안 마을을 울렸다. 포토존이라 만들어 놓은 곳에서 사진을 찍느라 소란이었다. 벽화 마을에 왜 그런 장치가 필요한지 모를 일이다. 이름만 들어도 닥나무가 많았을 법한, 닥밭골마을에 다시 가고 싶어지기를 기대한다.~


눌차 정거마을 

 우연히 들렀다가 담장 그림이 맘에 들어 수필집 표지화로 썼던 곳, 재방문이 반갑다. 물론, 화가의 허락도 받았었다. 도심에서 뚝 떨어져 강서구에 위치한 마을. 해안길이 끝나는 곳까지 달려서야 마을에 다다른다. 바다엔 굴 양식장이 빼곡하고, 해안엔 굴 껍데기가 산더미로 쌓여 있다. 거가대로를 지나는 눌차대교가 하늘을 가로지르고, 건너편엔 컨테이너 신항만이 보인다. 낚시꾼들도 즐겨 찾는다. 벽화 속 갯벌과 갯벌에 사는 생물과 어촌 풍경이 어촌마을과 퍽 어울린다. 이곳 벽화는 각각의 집과 바다와 등대와 조화를 이룬다. 바닷가엔 생선이 꾸덕꾸덕 말라가는 이곳이야말로 벽화마을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있는 그대로의 마을에 색만 입혀놓았다.


~ 감천문화마을 

 일 년간 이 마을 공부방에 드나들었다. 어느 날 다른 길로 들어섰다가 덜컥 겁이 났다. 길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어서다. 그러나 한 번도 길에 갇힌 적은 없다. 막다른 길도 없었으며, 길은 어디로든 뚫려있었다. 사통팔달이란 말을 이 마을 골목에서 떠올렸다. 옥녀봉과 천마산 자락을 따라 빼곡히 들어선 푸른 지붕은 일제히 감천항을 향하고 비손하는 느낌이다. 여기서는 벽화 몇 장 찍고 돌아설 게 아니다. 골목 으로 들어가 마을이 전하는 이야기를 찬찬히 들어볼 일이다.

~물만골마을

물이 많은 골짜기의 자연마을. 작은 계곡을 사이에 두고 마을이 양 골짜기에 들어앉았다. 이곳 역시 전쟁과 무관하지 않다. 황령산 봉수대 가는 길에 이 아늑한 마을을 내려다보며 가쁜 숨을 고르곤 했다. 폐가인 듯 낡은 집에서도 사람 소리가 두런두런 들린다. 유독 사찰 표시가 많다. 과거 살기가 팍팍하던 때 신앙에 기댄 이가 많아서였을까 하고 섣부른 결론을 내린다. 저만치 시내엔 쌍둥이 빌딩이 여봐란듯 하늘로 솟아있다. 그곳과 이곳은 전혀 딴 세상 같다. 벽화는 소박하지만, 골목을 따라 돌아봐도 좋을 곳이다. 


 

김나현

본지편집위원, 수필가, 여행작가, <월간부산>객원기자

부산문인협회 회원, 수필과비평부산작가회 회장, 부산수필문학상, 수필과비평문학상

작품집 <바람의 말>, <화색이 돌다>, <달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