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터치] 양심과 수치/김나현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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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8-09-16 18:41:11
- | 본지 26면
여자들 구두만 내려다본다. 신발을 도둑맞고 생긴 부작용이다. 혹시라도 사라진 내 신발을 발견할까 하는 희망 없는 행동임을 안다. 뭘 잃어버린 사람이 죄를 더 짓는다고 하는 건, 가져갈 만한 대상 모두를 의심 선상에 올려놓아 그렇다는 말일 것이다. 신발을 신고 간 누군가 때문에 불특정 다수가 의심 대상이 돼버린 셈이다. 현관을 드나들 때마다 그 여자가 신었을 후줄근한 구두를 발로 찼다. 내 구두야말로 얼마나 황당했겠는지. 생판 다른 발 냄새를 강제로 맡게 되었으니. 쓰던 손수건만 잃어도 서운한데 하물며 디자인이며 굽 높이며 착용감이 딱 맘에 들었던 구두를 도난당했으니 믿고 맡긴 양심에 뒤통수 제대로 맞은 기분이다.
그날 점심 때 먹은 가자미 튀김이 원인이었다. 이 생선튀김에 홀리지만 않았어도 출입구를 한 번쯤 거들떠봤을 것이다. 두 사람이 먹는 추어탕 밥상에 웬 생선이 네 마리나 나온단 말인지. 그것도 노란 튀김옷을 화사하게 차려입은 도톰하게 살진 가자미가.
아는 이를 따라간 추어탕집은 가정집을 개조한 식당이었다. 거실로 보이는 방엔 여자 손님들로 자리가 거의 찼다. 딱 하나 남은 자리를 뺏길세라 구두를 얼른 벗어 신발장에 밀어 넣고 빈자리에 앉았다. 옆 밥상을 흘깃거려 보니 밥상마다 생선이 올라 있다. 이 생선구이가 이곳 자랑이며 그래서 여자 손님이 많은가보다 여겼다.
우리 상에도 푹 곤 우거지가 먹음 직한 추어탕과, 흡사 고구마튀김처럼 바싹 튀긴 가자미가 나왔다. 이 생선을 구두가 도난당하는 줄도 모르고 발라먹었다. 꼬리를 잡고 반 토막 내어서 지느러미까지 잘근잘근 먹어댔다. 누가 나가는가 하고 현관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아니 누구도 의심할 생각조차 없었다. 대부분 사람은 그렇지 않을까 싶다. 그동안 오른쪽에 앉았던 체구가 좀 큰 여자 둘이 나갔고, 왼쪽 자리에 우리보다 늦게 온 젊은 여자 셋이 뭐라고 투덜대며 나갔다.
커피까지 마시고 신발장에서 신발을 찾을 땐 상황이 종료된 다음이었다. 예닐곱 칸쯤 되는 신발장을 샅샅이 훑어봐도 유명상표 내 검정 구두는 보이지 않았다. 손님 신발을 일일이 확인하니 남은 거라곤 보기에도 허름한 구두 한 켤레다. 처음엔 당연히 잘못 신고 갔을 거라 여겼다. 가을 털끝만큼도 의심하지 않았다. 언젠가 나도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나오다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고 온 적이 있기에.
쌀 포대 배달사고도 있다. 친정에서 쌀을 보냈다는데 몇 날이 지나도록 오질 않았다. 요즘 택배는 하루 정도 늦어질 때도 있지만 보통 보낸 다음 날엔 도착한다. 분명 배달 사고가 난 거였다. 일주일쯤 지나 앞 동에 있던 쌀 포대가 주인을 찾아왔다. 그런 일도 있고 하여 양심이 돌아오기를 줄곧 기다렸다. 그러나 구두는 영영 무소식이다. 나는 안다. 나를 받치고 다닌 정든 신발에 대한 애도가 끝날 때까지, 어처구니없던 처음의 마음에 차츰 절망이 들어서고, 곧 체념으로 이어질 것이며, 끝내 잘 신고 잘살라고 억하심정의 축원까지 하고서야 내 마음이 편해지겠다는 것을. 아니면 혹여 발목을 삐거나 다리가 부러지는 일 있으면 양심을 버린 대가이거니 여기라며 미련을 떨친다.
그 일이 있은 지 얼마 후다. 문학모임 자리에서 잃어버린 신발 이야기를 설파했다. 잘 챙기라는 말이 요지였겠다. 사람들은 자신이 겪고 나서야 이런 말에 실감한다. 하필 그날 참석한 회원 한 사람이 신고 온, 장인이 만들었다는 수제구두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날도 옆방에는 고등어조림 정식을 먹는 여자들로 북적댔다. 그들이 나갈 때마다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야 했던 걸까.
그날 점심 때 먹은 가자미 튀김이 원인이었다. 이 생선튀김에 홀리지만 않았어도 출입구를 한 번쯤 거들떠봤을 것이다. 두 사람이 먹는 추어탕 밥상에 웬 생선이 네 마리나 나온단 말인지. 그것도 노란 튀김옷을 화사하게 차려입은 도톰하게 살진 가자미가.
아는 이를 따라간 추어탕집은 가정집을 개조한 식당이었다. 거실로 보이는 방엔 여자 손님들로 자리가 거의 찼다. 딱 하나 남은 자리를 뺏길세라 구두를 얼른 벗어 신발장에 밀어 넣고 빈자리에 앉았다. 옆 밥상을 흘깃거려 보니 밥상마다 생선이 올라 있다. 이 생선구이가 이곳 자랑이며 그래서 여자 손님이 많은가보다 여겼다.
우리 상에도 푹 곤 우거지가 먹음 직한 추어탕과, 흡사 고구마튀김처럼 바싹 튀긴 가자미가 나왔다. 이 생선을 구두가 도난당하는 줄도 모르고 발라먹었다. 꼬리를 잡고 반 토막 내어서 지느러미까지 잘근잘근 먹어댔다. 누가 나가는가 하고 현관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아니 누구도 의심할 생각조차 없었다. 대부분 사람은 그렇지 않을까 싶다. 그동안 오른쪽에 앉았던 체구가 좀 큰 여자 둘이 나갔고, 왼쪽 자리에 우리보다 늦게 온 젊은 여자 셋이 뭐라고 투덜대며 나갔다.
커피까지 마시고 신발장에서 신발을 찾을 땐 상황이 종료된 다음이었다. 예닐곱 칸쯤 되는 신발장을 샅샅이 훑어봐도 유명상표 내 검정 구두는 보이지 않았다. 손님 신발을 일일이 확인하니 남은 거라곤 보기에도 허름한 구두 한 켤레다. 처음엔 당연히 잘못 신고 갔을 거라 여겼다. 가을 털끝만큼도 의심하지 않았다. 언젠가 나도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나오다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고 온 적이 있기에.
쌀 포대 배달사고도 있다. 친정에서 쌀을 보냈다는데 몇 날이 지나도록 오질 않았다. 요즘 택배는 하루 정도 늦어질 때도 있지만 보통 보낸 다음 날엔 도착한다. 분명 배달 사고가 난 거였다. 일주일쯤 지나 앞 동에 있던 쌀 포대가 주인을 찾아왔다. 그런 일도 있고 하여 양심이 돌아오기를 줄곧 기다렸다. 그러나 구두는 영영 무소식이다. 나는 안다. 나를 받치고 다닌 정든 신발에 대한 애도가 끝날 때까지, 어처구니없던 처음의 마음에 차츰 절망이 들어서고, 곧 체념으로 이어질 것이며, 끝내 잘 신고 잘살라고 억하심정의 축원까지 하고서야 내 마음이 편해지겠다는 것을. 아니면 혹여 발목을 삐거나 다리가 부러지는 일 있으면 양심을 버린 대가이거니 여기라며 미련을 떨친다.
그 일이 있은 지 얼마 후다. 문학모임 자리에서 잃어버린 신발 이야기를 설파했다. 잘 챙기라는 말이 요지였겠다. 사람들은 자신이 겪고 나서야 이런 말에 실감한다. 하필 그날 참석한 회원 한 사람이 신고 온, 장인이 만들었다는 수제구두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날도 옆방에는 고등어조림 정식을 먹는 여자들로 북적댔다. 그들이 나갈 때마다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야 했던 걸까.
인간만이 부끄러움을 아는 동물일진대,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양심에 수치라는 게 있기나 할지. 나는 상식 부족으로 비싼 구두를 통째 날렸고, 그 회원은 내게 들은 상식 덕에 구둣값을 계좌로 받았다. 대가를 받았을망정 신던 구두를 잃은 기분이 유쾌할 리 없다. 꼭 물건의 가치를 계산하기보다 자신 온기가 밴 물건이기에 그렇다.
후로 식당에 갈 때 비싼 신발이거나 아니거나 꼭 열쇠 달린 칸에 넣는다. 아니면 비닐봉지에 넣어 들어간다. 이런 내가 별난 건지, 믿지 못할 사람들이 나를 별나게 만든 건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키는 양심이야말로 진정한 자존심 아니랴.
수필가
후로 식당에 갈 때 비싼 신발이거나 아니거나 꼭 열쇠 달린 칸에 넣는다. 아니면 비닐봉지에 넣어 들어간다. 이런 내가 별난 건지, 믿지 못할 사람들이 나를 별나게 만든 건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키는 양심이야말로 진정한 자존심 아니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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