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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문화』

일본로드투어-1. 히로시마

by 서정의 공간 2018. 12. 3.





 

일본로드투어 히로시마

 

-원폭 도시 히로시마의 가을, 그리고 미야지마

                                                                             

 

일본은 여행하기에 좋은 나라다. 일단 가깝다. 먹을거리가 낯설지 않고, 환경과 문화로도 크게 이질감이 없다. 시간이나 경제적 처한 형편 따라 배편을 이용하면 경비도 절감된다. 엔화환율이 좀 높은 게 흠이긴 하다.

일본에 간다고 할 때 주로 나가사키나 도쿄, 오사카 쪽 또는 홋카이도나 벳푸 등으로 가는 온천욕을 포함한 여행이 주류가 아닌가 한다. 규슈, 혼슈, 홋카이도 등으로 열 번쯤 갔던 일본은 지역과 계절 따라 그곳만의 기억으로 남는 부분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뭐니 해도 기차 여행이다. 역 도시락 에끼벤을 먹으며 달리던 주변 풍광이 영화장면처럼 스쳐 지난다.

어느 항공사의 상품 덕분에 히로시마만 단독으로 다녀왔다. 사실 히로시마는 원폭의 도시란 것 외는 아는 게 없을 정도였다. 그곳으로 여행갈 거라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일본 7개 도시를 60% 이상 저렴하게 판매한 왕복항공권을 구매해 요나고에 이어 히로시마를 다녀왔다.

이 히로시마를 회상하면 미야지마부터 떠오른다. 히로시마 역에서 전철을 타고 30분여 달리면 미야지마구치역에 도착한다. 여기서 다시 페리로 10분여 걸리는 섬 미야지마.

히로시마 관광청은 미야지마를 방문해야 할 다섯 가지를 든다. 이 머무는 섬, 밀물과 썰물 때가 서로 다른 섬의 풍광, 이쓰쿠시마를 비롯한 다양한 사원, 해발 530m의 미센[弥山]이 자아내는 사계절 경치, 다양한 먹을거리 등이다.

미야지마로 가는 관광객을 페리가 쉬지 않고 실어 날랐다. 여행객보다 일본인이 더 많다는 사실은 그만큼 현지인도 오고 싶은 섬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미야지마에 내리면 누구나 바다에 우뚝 선 오토리이를[大鳥居]를 향한다. 토리이는 신사 쪽은 선한 곳, 바깥쪽은 악한 곳으로 구분하는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어느 여행지에 갔다 왔을 때 하루쯤 머물고 싶은 곳이 있다. 미야지마가 바로 그런 곳이었다. 바닷물이 빠져 나간 오토리이는 가까이서 만져보기도 했지만, 이 세상이 아닌 듯 신비한 운치를 자아내는 바다에 잠긴 오토리이를 보지 못했고, 물에 비친 붉은빛 신사의 회랑을 걸어보지 못했다. 전통가옥과 예쁜 가게가 아기자기하게 이어지는 골목도 다 걸어보지 못했다.

 

1,400년 전에 세워지고, 이미 17세기에 일본 3경으로 꼽혔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고 국보이기도 한 이쓰쿠시마 신사. 신사 담장 너머로 오토리이가 보이는 가을 색 짙은 미야지마 풍광은 가을 끝자락 여행에 정점을 찍었다.

신사 옆길로 가다 만난,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전쟁에서 죽은 장병들 넋을 위로하기 위해 짓다가 죽어 미완성으로 남았다는 대경당, 깐 다다미가 900여장 분량이라 센조카쿠[千畳閣천첩각]라 불린다는 누각은 일본 건물풍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밀양루 같은 누각을 연상케 했다. 100엔을 내고 입장했다. 단청 없이 낡고 바랜, 인생 다 산 구순노모를 보듯 늙은 누각 깊숙이 들이치는 가을볕, 볕과 기둥이 만드는 짙은 그림자, 누각 문턱에 앉아 말없이 볕을 쬐는 사람들, 이 모두가 어우러진 미야지마의 가을.

 

여행한 후면 꼭 후회가 생긴다. 자유여행이라 바쁜 일정도 없었건만, 그들 옆에 나란히 앉아 눈앞에 익어가는 가을의 시간을 음미하지 못했다. 누가 어떤 목적으로 지었건, 일본풍 주택이 내려다 뵈는 누각에서 내려다보는 미야지마의 가을 운치는 최고였다. 벽과 천장에 붙은 글씨와 그림 같은 오랜 흔적들이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말을 새기게 할 뿐.

히로시마에는 두 개의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이 있다. 하나는 평화기념공원에 있는 뼈대만 남은 원폭 돔이고, 다른 하나는 미야지마에 있는 이쓰쿠시마 신사다. 이 외 히로시마성, 일본식 빈대떡 촌 오코노미무라, 토모노우라 골목과 항구, 슈케이엔 정원 같은 볼거리가 있지만 원폭 돔과 미야지마만 봐도 다 봤다 싶을 만큼 느낌이 알차다.

 

히로시마 공항에서 산 5일 용 투어리스트 패스는 편리했다. 4,000엔이 적은 돈은 아니었지만, 전차 히로덴, 시내버스, 페리, 공항 리무진 등 표만 제시하면 일사천리 통과였다. 패스를 사지 않았더라면 매번 요금을 계산해야 했겠으니, 시간 들고 동전을 세느라 신경 쓰였을 건 두말할 것 없다.

대지를 물들인 추색秋色으로 가슴까지 흠뻑 물든 히로시마. 어쩔 수 없이 원자폭탄과 뗄 수 없는 아픈 도시였지만, 그 아픔을 딛고 꿋꿋하게 일어선 도시는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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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신사와 오토리이.jpg


2. 센조카쿠[천첩각].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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