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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수필가가 감동한 수필/송백영숙기린협서-박제가

by 서정의 공간 2017. 4. 2.


박제가-송백영숙기린협서.hwp






-수필가가 감동한 이 한 편의 수필

궁핍한 날의 벗

                                                               


“천하에서 가장 친밀한 벗으로는 곤궁할 때 사귄 벗을 말하고, 우정의 깊이를 가장 잘 말한 것으로는 가난을 상의한 일을 꼽는다.”

<송백영숙기린협서送白永叔基麟峽序>는 집안 식구를 데리고 기린협으로 떠나는 벗에게 박제가가 쓴 진심 어린 걱정이 담긴 편지다. 박제가는 백영숙보다 일곱 살이 아래로 30여 년을 교유하였다. 그들 우정에는 서얼 출신이라는 불운과 궁핍하고 옹색한 날을 함께한 동병상련의 마음이 깔려있다. 하여 세상에서 가장 지극한 벗은 가난할 때 사귄 벗이라고 말한다. 이는 서로 처한 상황이 비슷하니 겉모습이나 행적을 돌아다볼 필요가 없고, 가난이 주는 고통스러운 상황을 서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과연 나의 빈천함을 마음의 거리를 재지 않고 털어놓고 싶은 벗이 있을까. 그만큼 마음 맞는 친구를 얻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남에게 부탁하는 일 중 가장 꺼리는 대상이 재물이라 하지 않던가. 위의 글을 몇 번이고 꾹꾹 눌러 읽을 때 생각 속으로 곧장 한 사람이 떠오른다. 나의 곤궁한 시절을 지켜본 벗이다. 물론 그런 시기를 벗어나서도 주춧돌처럼 깔린 우정이 흔들리거나 한 적은 없다.

남편이 명의를 빌려주어 만든 사업체가 넘어가며 궁지에 몰린 적이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억울하게 독박을 쓴 거였다. 형제간이라 소송도 하지 못했다. 집안 장남으로서의 형제애가 자초한 일이었다. 어이없게도 가장을 불시에 법에 압류 당했다. 잘 다니던 직장을 뛰쳐나오니 펼쳐진 건 역경이요 난간難艱이었다. 이런 내막을 안 벗이 어느 날 쌀 한 포대를 들고 불쑥 대문을 들어선 것이다.

“궁색하고 가난한 내 처지, 힘든 줄 아는 자 하나도 없네.” 라는 <시경>의 시구처럼, 간구하게 살아가는 현실은 당사자인 내게 닥친 일이고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일 뿐이다. 진심으로 자신 일처럼 여기고 도와주는 이가 없다는 뜻일 거다. 밥이야 굶지 않았지만 쌀 한 포대의 성의는 값으로 매길 대상이 아니었다. 쌀이라는 양식이 주는 든든함과 위로감은 다른 어떤 것보다 컸다. 그 일은 평생 잊히지 않겠지만 잊어서도 안 될 일이다. 가마득히 잊고 살다가도 문득 떠오르면 가슴이 뜨거워지고 새삼 고마워진다.

제목 속 백영숙은 간서치看書痴라 손가락질받은 이덕무의 처남이다. 일찍부터 세상에 이름이 알려졌다. 위로는 정승, 판서, 목사, 관찰사가 그의 벗이고 현인과 명사 또한 그를 인정하였다. 그 밖에 친척이나 마을 사람들, 주먹을 뽐내는 부류와 서화, 인장, 바둑, 의술, 지리의 무리부터 시정의 농부, 어부, 푸줏간 주인과 장사치 같은 천인에 이르기까지 도타운 정을 나누었다. 각각의 상대에 따라 극진히 대우하여 환심을 얻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그 주변에 있으니 마음 트고 놀아볼 뜻에 맞는 친구 하나쯤 없었을까. 하나 영숙은 때때로 박제가의 문만 두드렸다. 이유인즉 달리 갈 곳이 없어서라고 하였다. 두루 폭넓게 사귀었으되 각각 사귄 정도는 그만그만하였던 모양이다. 아니면 자신 처지를 직시하여 부류와 섞이기를 일찌감치 접었을 수도 있겠다. 이런 이야기는 비단 역사 속 얘기만은 아닌 것 같다.

늘 시간이 촉박하며 허겁지겁 산다고 여겨질 때 느긋한 여유를 좀 누려봤으면 싶어진다. 이럴 때 맘에 맞는 벗과 해후상봉하여 별것도 아닌 말꼬리나 잡으며 수다 떨고 긴장을 풀어놓고 싶다. 굳이 고급진 장소가 아니라도 좋다. 주인은 그림처럼 제자리에 앉아있고, 객끼리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내도 좋은 곳, 아메리카노 커피 한 잔이면 족하다. 문득 이러고 싶을 때면 혹여 불러낼 벗이 있나 하고 휴대폰을 뒤적인다.

그러나 딱 이 사람이라고 확신이 생기는 대상을 찾지 못한다. 풍요 속의 빈곤이란 비유가 이럴 때도 어울릴지는 모르겠다. 주변 정리 차 이미 관계가 끝난 전화번호를 가끔 정리하지만, 번호는 갈수록 늘어간다. 이는 교유의 깊이보다는 사회생활에서 관계 생성이 일어나기 때문일 거다. 나의 요청에 기꺼이 시간을 내주고 들썩이는 심사를 맞들어줄 대상은 쉬 다가오지 않는다. 물론 저쪽 사정을 나름대로 예견하여 헤아리는 몹쓸 예단으로 차단되는 사람도 있긴 할 것이다. 전화기 주소록 상단에 뜨는 440개 연락처 중 진정한 내 편을 찾던 일을 포기한다. 18세기를 산 백영숙이나 21세기를 사는 내 처지나 한마음이지 않나 싶다.

가난한 사정까지 들여다보던 벗이 식솔을 데리고 기린협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그곳은 지금의 인제로 ‘험준하기가 동해 부근에서 제일이고, 수백 리나 되는 땅이 모두 산봉우리와 깊은 골짜기라 나뭇가지를 부여잡고서야 들어갈 수 있으며 소식은 겨우 일 년에 한 번 서울에 이를 것이며 밤이 되면 외로운 산새, 슬픈 짐승이 울부짖어 그 소리가 골짜기에 울려 퍼진다.’는 곳이다. 허물없이 사귀어 온 영숙이 장차 겪을 역경에 그를 보내는 벗의 마음도 못내 무겁기만 하다. 남자로 태어나 세상의 공명을 좇지 않고 산속으로 들어가는 좌절이 내일인양 깊이 슬픈 것이다.

열 살 차이로 20년 넘게 사귀어 온 내 처지를 지켜보던 나의 벗도 아마 같은 마음이지 않았을까. 당시 내가 처한 환경도 벗이 보기에 마냥 남의 일 같지는 않았으리. 그렇다고 쌀 포대를 들고 찾아올 생각을 어찌했단 말인지. 나로서는 도무지 흉내 내지 못할 일임이 분명하다. 요즘 그 벗과의 교류가 좀 뜸해졌다. 이유는 마음이 멀어졌다기보다는 각자 사는 현실에 매인 때문이다. 하나 그 사이까지 멀어지거나 고마움이 희석된 건 아니다.

“영숙과 제 사이가 어찌 궁핍한 날의 벗에 불과하겠는가?” ​라는 끝 문장이 내가 할 말을 대신한다. 나와 벗 사이가 어찌 궁핍한 날의 벗에 불과하겠는가.




박제가-송백영숙기린협서.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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