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수필과비평』제13호 발간사
문장을 위해 더 고독해지기를
김나현
내가 아직 마음에 드는 문장을 쓰지 못한 것은
내가 충분히 고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행은 나에게서 멀어진 것들과 마주하는 시간이다. 무엇을 바라보려면 고독해야 한다는데 여행하는 시간이 그렇지 않나 싶다. 그 소실점이 없는 글을 쓰는 일도 여행의 과정과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문학은 나를 비워내는 일. 나를 텅 비운 껍데기 상태인 맨발로 하루를 살고 왔다. 푸껫에서 오후 시간을 보낼 보트를 탈 때 신발을 육지에 맡겨놓고 타야했다. 평생 발을 담아온 신발을 벗고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자니 약간의 불안함이 인다. 신체 일부를 두고 가는 미심쩍음이랄지. 그러나 곧 신발의 착용여부조차 잊어먹는다. 전혀 거치적거리는 게 없는 홀가분함이라니. 신발이 없는 세계는 생각보다 자유로웠다. 어쩌면 구속으로부터 벗어난 자체가 여행일 터다. 심신이 깃털처럼 가벼운 여행….
그런 여행길에 생과 사랑과 여행에 관한 문장을 읽었다. 생, 사랑, 여행… 지금 살아가는 삶을 총체적으로 요약한다. 길을 나서면 소설보다 재미난 세상이 펼쳐진다. 그럼에도 읽을 책을 챙겨간다. 실은 몇 장 넘기지도 못할 거면서 말이다. ‘주어진 생을 끌어안고, 그 생을 사랑하면서, 나는 지금을 여행하고 있다.’며 눈앞에 펼쳐진 현재에 무한한 격려와 찬사를 보낸다. 앞에 보이는 신세계가 모두 문학이 아니랴. 피부색과 얼굴 생김새가 다른 보트 선장, 까만 피부의 흑인계 DJ, 한국에서 온 신혼 부부, 다른 언어를 쓰는 젊은이들, 저 멀리 산등성이에 걸린 구름에 물드는 노을까지…. 사위가 일몰에 들자 국적이 다른 사람들이 각각 고독 속으로 침몰하고 있었다. 생과 사랑과 여행의 집합체에 강렬하게 소속되는 순간이었다.
레몽 드파르동은 살아있는 전설이다. 지난 수십 년간 전장을 누빈 종군기자로 치열한 삶을 건너온 그는, 노년에 이르러 다른 길로 들어선다. 바깥으로 향하던 렌즈를 이윽고 자신의 내부로 돌린다. 익숙한 자리, 셔터를 눌러야 하는 긴박한 ‘결정적 순간’이 치열하게 강요되던 그 자리를 벗어나 세상과 조용히 마주 선다. 비로소 자신과 대면하며 느린 인생여정에 들어선 거다. 길과 나무, 사막, 텅 빈 거리, 밤의 상점, 버려진 자동차, 창밖의 풍경, 구름…, 노장의 시선에 든 풍경은 견고하고 고독하다.
생의 기나긴 길을 거의 지나와 마주하는 고독. 그것은 나로부터 멀리에 있고 가까워지지 않던 대상과의 만남이며 눈뜸일 것이다.
평생의 동반자로 여기고 발맞추어 나아가는 문학도 그 고독안에서 원숙하게 만나게 되지 않나 싶다. 견고한 고독의 세계를 걸어가는 우리들. 진정 더 고독해져서 마음에 꼭 드는 문장을 쓰기를 기원한다. 우선 나부터, 또 여러분도. 정녕 문학이란 생이고 사랑이며 여행이기도 하겠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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